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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버그」는 억울하게 죽었다"-두 아들이 명예 회복 운동전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의 「줄리어스·로젠버그」부처가 공산간첩으로 처형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두 아들「로버트」와「마이클」은 그들의 부모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주장하면서 부모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저서에서 양친이 정치적인 음모의 제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저서는 그들의 양친이 무죄임을 주장한 부부간의 서신들을 모은 것이다.
한편 신문들은 지금까지 비밀에 붙여져 왔던 「로젠버그」부처 재판 기록을 두 아들의 요청에 따라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재판 기록 문서들은「정보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공개되고 있는데, 두 형제는 이 문서가 정부당국이 재판이 있기 훨씬 이전에 「로젠버그」부처를 처형하기로 결정했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 연방수사국(FBI), 미 중앙정보국(CIA), 법무성 등의 문서철에서 나온 이 재판관계 문서들은 정부가 「로젠버그」부처에게 간첩활동을 했음을 시인하도록 강요하려 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로젠버그」부처는 신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결코 간첩활동을 시인하지 않았었다.
지난 1950년에 당시의「에드거·후버」미 연방 수사국장은 법무성에 보낸 서한에서 이미 수감중인「로젠버그」의 처 「에델」이 간첩이었음을 자백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로젠버그」부처가 53년에 처형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후 「에델」이 사형 언도를 받자 「후버」국장은 그녀가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해 줄 것을 법무장관에게 종용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지금까지 밝혀진 재판 기록들을 분석한 끝에 당시의 정부 당국자들은 「로젠버그」부처로부터 자백을 얻어내려고 집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젠버그」부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죄를 주장했었다.
FBI는 형 집행 유예를 조건으로 「줄리어스·로젠버그」가 자백할 것을 열망했었다.
FBI 수사요원들은 「로젠버그」부처의 사형집행이 있기 수 시간 전까지도「뉴요크」주「싱싱」형무소로부터 1백50m 떨어진 한 차고에서 「로젠버그」부처 중 어느 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간첩임을 자백한다면 그 자백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로젠버그」부처는 53년 6월 19일 소련을 위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죄로 「싱싱」형무소에서 전기의자에 앉아 이슬로 사라졌다.
「로젠버그」부처를 동정했던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도 당시의「아이젠하워」대통령이 형 집행을 유예해 줄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말았었다.
「로젠버그」부처는 미국의 생존은 물론 세계 평화에 절대 중요한 열쇠인 원자탄의·비밀을 소련에 넘겨주었다는 유죄 판결을 받고 죽은 것이다.
「카우프먼」판사는 「로젠버그」부처에 대한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원자탄의 비밀을 소련에 넘겨준 사실은 공산군의 한국 침략을 촉진시켰으며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고들의 반역 행위에 댓가를 치렀겠는가』고 말하고 있다.
「로젠버그」부처의 무죄 항변은 당시 미국을 휩쓸었던「매카디즘」선풍으로 인한 반공 여론 속에 묻히고 말았었다.
「비오」12세 「로마」교황·「아인슈타인」·「사르트르」등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구명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이게 20여년이 지난 지금 「로젠버그」부처의 아들「로버트」와 「마이콜」은 그들의 모친이 마지막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미「파쇼」주의의 첫 희생자라고한 말의 진실 여부를 입증하기 바라고 있다.【AFP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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