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판·향검·기업인 커넥션 … 감사원도 손 못 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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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1심이 열렸던 광주광역시 지산동 광주지방법원. 허 전 회장에게 ‘일당 5억원’ 판결을 한 광주고법이 같은 건물에 있다. 1심에서 허 전 회장에 대해 “탈루 세금을 모두 냈고, 기업 부담이 크다”며 선고유예를 요청한 광주지검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일당 5억원’ 파문이 지역 법조계와 현지 유력인사 간의 전반적인 관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당 5억원 판결을 내린 판사나 사건을 맡은 검사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허 전 회장이 폭넓게 법조계 인맥 쌓기를 해온 것이 드러나서다. 허 전 회장의 동생은 200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중부지역 판사·변호사 골프모임 ‘법구회’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 가족과 친인척 중에도 법조인이 많다. 부친이 판사였고 매제는 검사 출신 변호사, 사위는 현직 판사다.

 판·검사와 지역 인사의 만남은 한국의 파워 집단인 법조계와 안면을 터놓으려는 지역 기업인 등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검사는 “전국을 돌며 근무하다 고향에 부임해 향검(鄕檢·해당지역 출신 검사)이 되면 지연·학연을 내세워 만나자는 요청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런 만남이 그릇된 것만은 아니다. 법조인으로서도 정보를 얻고 경제·사회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접촉이 잦아지면서 때론 문제가 발생한다. 비리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전주지검 C 검사가 직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근무할 때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인으로부터 7번 골프 접대를 받아 면직됐다. ‘스폰서 검사’때는 특검까지 구성됐다. 2010년 진주 지역 건설업자 정모(56)씨가 “검사 100 명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접대를 했다”고 주장한 게 계기였다. 한승철(51) 전 대검 감찰부장 등 4명이 기소됐으나 최종 무죄 판결 났다. 대법원은 “향응을 받은 것은 인정되나 대가성이 없 다”고 밝혔다.

 선재성(51)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 건도 있다. 2010년 법정관리 기업을 맡는 광주지법 파산부에 있으면서 법정관리인들에게 동창생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알선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 판결을 받았다. 그는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오래 근무한 향판(鄕判)이었다. 검찰 수사관도 비리에 연루된다. 지난해 고소인 가족으로부터 사건과 관련해 골프채 1세트와 현금 30만원 등을 받은 창원지검 D 전 수사관은 1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길어야 2년이면 근무지를 옮기는 검사와 달리 수사관은 5년까지 근무해 유착이 더 불거지기도 한다.

 판·검사와 토착 유력인사 사이에 유착이 많은 것은 법조인들이 감시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 소속인 판사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 검사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수사와 관련된 사항은 개입할 수 없다”며 감사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향판·향검 비리를 막겠다고 ‘특별감찰관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지난달 국회가 통과시킨 특별감찰관제에서는 판사와 검사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특별감찰 대상에서 빼면서 사법부를 놔둘 수 없어 함께 제외했다.

 지역 유착에 대한 유일한 견제는 검찰 등의 자체 감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한 처벌이라야 옷을 벗어도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는 면직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건국대 한상희(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감찰관제 대상에 판·검사를 포함하고, 판·검사가 비리를 저지르면 특별검사가 수사하도록 해야 지방 토착 인사들과의 유착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선윤·이가영·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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