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균형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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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 기획은 23일 앞으로의 정책기조는 고도성장에서 적정성장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지난 65년 이후 10년간 추구해온 고도성장정책으로 많은 모순을 낳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로써 우리의 상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출기반을 구축한 성과는 그런 대로 괄목할만한 것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도성장정책은 물가압력의 누적적인 축적과 국제수지의 만성적인 악화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므로 장기간 추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 위에 73년말 이후의 원유파동·자원파동·국제금융질서의 급변 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고도성장정책을 추구해온 결과로 비록 우리의 성장실적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기는 했으나 「인플레」압력의 가중과 단기부채의 급팽창이라는 애로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주요공업국의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 수준이하로 억제되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는 74년에 45%수준, 그리고 75년에 20% 수준을 상회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당연한 소산으로 교역조건의 급속한 악화와 단기부채의 누적으로 부채관리에 커다란 난점을 파생시키고 있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대가가 너무 컸었다면, 이 시점에서나마 균형성장의 정책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만시지탄은 있지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적정성장 개념이 구체 적으로 어떤 것이냐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우선 성장률을 7∼8%선으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균형적인 적정성장이냐 하는 문제는 더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장률을 7%이하로 떨어뜨릴 때에는 실업률이 증가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므로 고용수준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 어쩌면 7%성장은 적정 성장 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7%의 성장률이 물가의 불안정이나 국제수지의 한계적인 균형화를 가져올 수 없는 모순이 있다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적정 성장률이라고 단정키 곤란한 것이다.
만일 우리의 물가정세나 국제수지사정으로 보아 7%의 성장률을 전제로 할 때 물가의 안정화나 국제수지의 한계 균형력이 강화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률과 물가 및 국제수지문제를 함께 교량 선택하는 접근방법 즉 「트레이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제반경제지표로 보아 고용수준보다는 국제수지 압력의 완화나 물가의 안정화가 더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면 많은 어려움은 있겠지만 후자를 우선 적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률 중심의 정책사고에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할 것이다.
안정되고 착실한 성장을 장기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차피 지난 10년간의 성장과정을 재평가하고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모순을 일단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애로를 단기간 내에 해소시킬 수 있다고 낙관하거나 또는 양적 확대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진실한 뜻에서의 균형성장이나 적정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왕 균형성장이나 적정성장을 정책의 기조로 삼으려한다면 우리의 내외여건으로 보아 무엇이 균형성장이고 적정성장인가를 우선 객관적으로 개념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개념의 명료화가 없다면 부문대책과 종합정책을 연결시키는 척도가 마련되지 못함으로써 결국 정책의 실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구호만 변할 염려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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