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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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교육계의 해묵은 부조리는 정화되어가고 있으나 이에 비례하여 사제간의 애틋한 정이 식어가는 경향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 일선학교는 심한 부조리「노이로제」에 사은의 표시나 학부모의 협조가 달갑잖게 여겨지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나 제자에 대한 지도열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식어가는 사제간의 정을 따뜻이 되살리는 일은 부조리제거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40년가까이, 교단을 지켜온 서기원 교장(59·서울숭문중·고교)은 학부모 김진순씨 (40·서울성북구보문동5가)와 교장실에서 만나 「사제간의 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최근 교원의 사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 금년 1년 동안 일선학교에서도 달라진 것이 적지 않겠지요.
▲서=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이라면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잡부금 징수」다, 「부교재 강매」다 하는 이른바 교육계의 고질적인 부조리가 하나씩 제거돼 퍽 다행스런 점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과 제자간에 오가던 따뜻한 정이 부쩍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 걱정스런 점입니다.
▲김=선생과 학생수가 크게 늘어나고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사제간의 정도 과거 저희들이 학교 다닐 때처럼 그렇게 애틋하진 못 할줄 예상은 해왔읍니다만….
▲서=몇년전까지 만 해도 스승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거의 절대적이었고 제자에 대한 지도열이나 애착심이 대단했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달라진 것이 많아요. 학생은 선생을 대수롭지 않은 월급장이로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아 선생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도의욕을 잃게 마련입니다.
특히 요즘 일부 학생들 가운데는 『전화1통화면 알아본다』는 못된 풍조가 생겨나고 선생들 가운데는 학습참고서 추천의뢰 등과 같은 학생들의 요구조차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무사안일주의가 싹트고있는 것 같습니다.
▲김=그와 같은 결과를 빚은 것은 학부모와 선생에게 다같이 책임이 있는 줄 압니다.
학부모가 얼마만큼 교권을 존중하고 선생이 어떤 자세로 가르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머리에 비쳐지는 스승의 상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목포의 한 자모가 딸의 성적평가에 불만을 품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을 가한 것과 같은 교권유린행위는 다시는 없어야겠습니다.
▲서=물론 그 책임의 8할 이상은 교육자가 져야할 줄 압니다. 그러나 학원부조리를 제거함에 있어서도 다소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교원의 잘못을 전제교원의 잘못으로 잘못 알거나 옥석의 구분을 분명히 못한 경우도 있어요. 만일 선량한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서 무슨 피의자취급을 받는다거나, 정년 퇴직하는 은사에게 전하는 학생들의 갸륵한 사은의 표시가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분위기라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나 사제간의 따뜻한 정이 생겨나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사제간의 정이 메마른 학교는 사실 학원과 다를 바 없는 삭막한 지식의 전달장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김=그 점에 대해서는 동감입니다만 일선학교들이 요즘 지나친 「노이로제」에 걸려있는 것 같더군요. 어느 학부모가 학교에 가져간 국화화분 1개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 화분은 학교에서 가져오라고 해서 갖다준 것이 아님』이라는 확인각서부터 받는 학교까지 있다고들 하더군요. 심지어 학생들의 「불우이웃돕기」마저 현금 대신 물품만을 거두는 학교도 없지 않아요. 교육자의 신념이 문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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