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30년만의 단죄 "나치 살인공장 여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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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살인공장」이라 불려온 「나치」독일의 「마이다네크」수용소의 여반장 「헬미네·브라운슈타이너」(55). 수녀라고 별명 붙은 이 「오스트리아」출신의 「나치스」친위대여대원이 지금 서독 「뒤셀도로프」주 재판소 제17배심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죄목은 살인·암살·교살·유아살해 등 법정살인죄는 모두 뒤집어썼다.
이 재판은 「마이다네크」수용소 간부15명(남10명·여5명)을 피고인으로 하고 있으나 현재 신병이 확보된 것은 「브라운슈타이너」한명뿐. 「히틀러」의 충견이었던 그녀는 울부짖는 유대인 여성과 어린이들을 무자비하게 회초리로 후려치면서 「개스」실에 몰아넣어 집단학살 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그녀는 특히 조리돌리는데 비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방식도 특유해서 유대인 여인들로 하여금 자녀들의 머리카락을 끌고 시가를 돌게 했다. 약하게 끌어 어린이들이 울지 않으면 그녀는 구슬뭉치가 달린 회초리로 여인들과 아이를 함께 후려갈겼다.
「폴란드」에 위치한 「마이다네크」수용소의 「개스」실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최저 25만명이라는 추산.
패전 후 「브라운슈타이너」는 유대인을 학대한 죄로 검거돼 49년에 「오스트리아」군사 법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용소로 전출되기 전의 죄상에서의 행위에 관한 단죄일 뿐 「마이다네크」에서의 범행은 발각되지 않았다.
그녀는 복역 후 여죄를 숨기기 위해 58년 「캐나다」로 이주, 거기서 지금의 남편인 미국인 건설노무자 「러셀·리언」과 결혼했다. 63년엔 미국국적을 얻었고 이와 함께 악명 높은 「브라운슈타이너」라는 성도 버릴 수가 있었다.
그 후 「뉴요크」로 이주, 과거의 악마 같은 생활을 청산하고 선량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충실했다.
그러나 그것이 안전만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배후에는 항상 「나치스」잔당을 추적하는 유대인 기관의 그림자가 뒤쫓고 있었다.
「빈」의 유대기록 「센터」수배자명단엔 이미 63년부터 그녀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아이히만」추적으로 민완을 세계에 자랑한 이 「센터」의 「위젠다르」소장은 「이스라엘」로 가서 3명의 「마이다네크」생존자들을 면담, 그녀의 모습을 파악해내는데 성공했다. 항상 회초리와 권총을 들고있는 여대원, 부릅뜬 눈초리, 하마 같은 입술, 조리돌리기의 명수, 회초리의 유단자….
「위젠다르」는 5년 동안 구주와 미주를 누비며 추적, 71년 「뉴요크」에서 그녀를 검거하여 또 한번 개가를 올렸다.
그가 체포되자 미국인남편 「리언」씨는 『그녀는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며 모든 이웃의 사랑 받는 벗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녀가 「나치스」잔당이라는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73년 서독으로 호송된 「브라운슈타이너」는 지난달 26일 첫 공판정에 나와서 『나는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왜 서독법정이 재판하려 드느냐』고 왕년의 매서운 눈초리와 앙칼진 목소리로 독설을 뿜어 방청객을 또 한번 몸서리치게 했었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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