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교재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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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성옥 문교부 차관이 11일에 발표한 『학습 참고서 사용에 관한 개선 방안』은 교육과 장학의 주관 부처로서의 문교부가 뒤늦게나마 학습 참고서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당연하고 적절한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이른바 학원 부조리 제거 작업의 주요 「타기트」가 되다시피 한 부교재 채택을 에워싼 일부 학교 및 교사들의 탈선을 발본색원해야 할 필요성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부교재 사용을 사단법인체의 부교재 심사 위에서 행하게 하겠다는 양상은 참으로 옹색하기 이를 데 없고, 도시 공익법인으로서의 그 같은 사단법인체가 어떻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하기조차 곤란하다.
당국의 이 같은 구상은 출판의 자유에 대한 원천적인 침해 위험이 있다는 일반론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그러한 사단법인체가 존속하여 소기 한대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부터가 많은 가설적 전제에서 있는 것이다. 사단법인도 하나의 공익법인일진대, 이러한 법인체가 수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량에 비추어 본다면 처음부터 부족한 액수의 기금이 필요할 것이며, 그러한 기금은 이익배당이나 어떠한 반대급부도 예상해서는 안될 기부 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오늘날 이 같은 기부 행위를 감당할 능력이나 의사가 있는 부교재 출판업자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다음으로, 이른바 부교재들의 공동 구입이나 알선 행위 등을 금지하고 부교재와 관련된 교사의 금품 수수 행위를 엄단한다는 것까지는 좋으나 학교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그러한 부교재의 사용을 「추천」할 수 있기까지의 까다로운 절차는 또 무엇인가.
『문교부에 납본된 학습 참고서 중에서 교장 책임 아래 교직원 회의가 교과별로 선정, 교육위에 보고하며, 이를 토대로 교육위가 정선한 것을 다시 학교에서 골라 사용을 추천할 수 있다』는 취지는 행정적으로 거의 불필요하면서도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절차를 강요하는 것이다. 뿐더러 그것은 근본적으로 학교나 교사 당국의 교육에 관한 자율권을 침해하고, 학사 행정에 대한 과잉된 행정 개입을 의미하는 것 이외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원부조리의 발본색원을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있는 관계 인사들을 포함하여 오늘날 사회 각계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모든 인사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이른바 부교재의 교육적 가치에 허심탄회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소년 시절, 국민학교에서 중학·고교·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의 학습 참고서의 신세를 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들의 오늘의 사회적 지위나, 정신적 소양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부교재의 공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학생·학부모들만이 매학기 쏟아져 나온「잉크」 냄새 짙은 부교재를 통해서 열심히 공부하여 오늘을 이룩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교과서 자체의 부실과 사찬이 자주 지적되고 있을 뿐 아니라 60명 또는 90명의 과밀학급에서 변변한 교육용 보조기재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오늘날 이 나라의 전반적 교육 환경을 고려할 때, 보다 양질의 학습 참고서를 보다 많이 제공함으로써 공부하겠다는 의욕을 북돋는 것은 장학 당국의 으뜸가는 권장 사항이어야 할 것이다.
양질의 학습 참고서를 장려하기 위한 심사 제도나 추천 제도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그 이상의 불필요한 절차와 학원 전체 또는 교사 전체를 불신하는 기조에 선 온갖 행정적 규제는 본질적으로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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