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찰·도청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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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마지막 요직인 국정원장이 고영구(高泳耉)전 민변회장으로 굳어지고 있다.

문재인(文在寅)청와대 민정수석은 25일 "(高변호사에 대해)대통령의 재가만 남은 상태"라고 전했다. 다른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盧대통령도 高변호사 카드에 긍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선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달에 이르도록 인선을 지연하면서 고심을 거듭해온 청와대는 국정원의 '탈(脫) 정치화'란 과제를 수행하기에 高변호사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盧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개혁은 국민의 신뢰회복이 관건"이라고 강조해왔다. 盧대통령이 지난 7일 장관 워크숍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보고는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국정원 직원의 정당.정부 부처.언론사 출입을 금지시키겠다고 밝힌 것도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풀이된다.

현재 국정원은 원장 밑에 1(해외).2(국내).3(북한)차장 및 기조실장을 두고 있다. 이 중 2차장 산하 직원들이 각 정당이나 정부 부처.언론사를 출입하며 정보를 수집해왔다. 사찰 시비나 도청 의혹도 이 과정에서 제기돼왔다.

이미 제시된 제도개혁 방향과 더불어 초대 민변회장을 지낸 재야 법조인에게 국정원을 맡겨 개혁성을 부각하고 탈법 시비에 휘말려온 국정원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결국 盧대통령의 구상인 듯하다.

다만 盧대통령은 자신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동북아 구상'때문에 다소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정보 수집에 투입됐던 인력을 해외 정보 쪽이나 남북 관계 강화 목적으로 돌려서 재활용한다는 것은 盧대통령의 또 다른 국정원 개혁 구상이다.

盧대통령은 "국정원의 우수한 인력을 하루 아침에 잘라 집으로 가라고 하는 것보다는 동북아 시대의 비전을 연구하게 하면서 정부가 만든 것과 비교하고 통합해 나가겠다"(7일 장관 워크숍)고 말한 바 있다.

신상우(辛相佑)카드가 불발된 뒤 이런 기준에 맞는 인사로 盧대통령은 이헌재(李憲宰)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의중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 구상에는 경제인 출신 원장이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주로 386 핵심참모들이 이런 방안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李전장관에겐 구체적인 제의까지 전달됐다고 한다.

그러나 李전장관이 고사한 데다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경제인을 국정원장으로 기용하면 경제 부총리와 투톱체제가 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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