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規矩<규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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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27면

“도끼를 잘 갈아야 장작을 팰 수 있다(磨好了斧子才能劈開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최근 한 말이다. 이 말에 ‘성장의 도끼(增長之斧)’ 논쟁이 뜨겁다. 도끼는 도구다. 성장 환경을 잘 갖추자는 취지다.

도구는 무릇 네 가지가 기본이다. 원을 그리는 컴퍼스 규(規), 사각형을 그리는 곱자인 구(矩), 수평(水平)으로 평평함을 재는 준(準), 길이를 재는 줄인 승(繩)이다. 이 넷을 합한 규구준승(規矩準繩)은 목수의 필수품에서 나아가 생활의 규범으로 통했다.

그중 규구(規矩)는 통치의 상징이었다. 중국 고대 벽화에서 보이듯 창조신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손에 들었던 것이 규구였다. 법이란 의미다.

한비자(韓非子)는 법치를 강조했다. “저울대에 걸어야 균형을 알 수 있고 컴퍼스를 갖춰야 원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완벽한 길(夫懸衡而知平 設規而知圓 萬全之道也)”이라며 “컴퍼스를 버리고 기교에 맡기고, 법을 버리고 지혜에 맡기는 것은 혹되고 혼란으로 가는 길(釋規而任巧, 釋法而任智, 惑亂之道也)”이라고 ‘식사(飾邪)’편에서 말했다.

반대론도 나왔다. 구당서(舊唐書) 열전 가운데 정치가 육지(陸贄·754~805) 편에서다. “무릇 중화에도 성쇠가 있고 오랑캐에게는 강약이 있다. 일의 기미에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고 일처리에는 안전과 위험이 있다. 따라서 틀림없는 규칙은 없고, 오랜 기간 옳기만 한 법 또한 없다(夫中夏有盛衰, 夷狄有强弱, 事機有利害, 措置有安危, 故無必定之規, 亦無長勝之法).”

여시구진(與時俱進)이라 했다. 영원한 법규는 없다는 말이다. 규가 무뎌지면 누규(陋規)가 된다. 악습을 말한다. 목수의 동반자가 훼방꾼이 되는 건 순간이다. 철 지난 규제를 치워야 하는 이유다.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했다. 살인·상해·도둑만 금한 법치의 이상(理想)이자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물리친 비결이다. 중국이 행정 간소화, 규제 철폐를 뜻하는 간정방권(簡政放權)에 나섰다. 지난해 416건의 규제를 없앴다. 올해 200건 철폐를 약속했다.

한국 역시 나쁜 규제 철폐에 나섰다. 이른바 창조경제를 위함이다. 단, 바른 법규조차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몰염치범(沒廉恥犯)을 엄벌로 다스림은 잊어선 안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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