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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다른 한·영의 통신장애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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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사람 사는 곳인데 이리 다를까 싶을 때가 있다.

 20일도 그런 날이었다. 한국에서 오후 6시부터 20여 분간 SK텔레콤에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완전 복구까지 5시간여 소요됐다니 SK텔레콤에 쏟아졌을 항의의 양과 정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SK텔레콤이 부랴부랴 “서비스 장애로 불편을 겪은 고객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마련 중”이란 입장을 내놓은 이유일 게다.

 영국에서도 같은 날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오후 7시부터 영국의 최대·최고 네트워크라는 EE도 통신장애를 일으켰다. EE는 곧 트위터에 “시스템에 그렘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984년의 영화 ‘그렘린’ 속 한 장면을 곁들인 채였다. 기계 고장을 일으키는 뭔가 있긴 한데 잘 모르겠다는 걸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거였다. 대충 14시간 뒤쯤인 다음날 낮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어제 오후 8시30분 문제를 파악,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긴 한데 휴대전화에서 ‘서비스 안 됨’ 표시가 사라진 건 EE의 주장과 달리 다음날이었다. 기자의 전화도 그중 하나였다. 사고 발생 후 19시간 만에 EE에서 날아온 문자가 이랬다. “지난밤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었는데 네 전화가 그중 하나였다면 정말 미안하다. 문제를 해결하긴 했는데 일부 전화기의 경우엔 아예 휴대전화의 전원을 아예 껐다 켜야만 정상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도 EE의 트윗에 달린 댓글은 대개 “내 것도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유였다. 그나마 항의 수위가 높다는 게 “그렘린 그림으론 도움이 안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 (공식으로) 항의할 거다”란 정도였다. 이러니 영국의 주요 언론에선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영국인이 불만을 덜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항상 그렇지 뭐”(『영국인 발견』)란 체념이 강할 뿐이라고 했다. 잘못될 일이 잘못됐다는 데 대한 확인, 인생은 원래 이런 사소한 안달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마지못한 인내와 냉소적 억제 말이다. 한마디로 덜 내색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통신서비스가 별로 아니냐고? 망의 속도나 깔린 정도는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서비스 자체는 영국 쪽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통신요금은 오히려 저렴한 편일 수도 있다.

 통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은행계좌를 개설하러 갔다가 며칠 걸리는 처리에 한국을 그리워하다가 막상 개설 후엔 은행이 수시로 “네가 거래한 게 맞느냐”며 확인하는 걸 보곤 영국의 시스템에 감탄했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엔 매사 트레이드오프(하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양자 관계)가 있는 거다. 자원이 한정된 만큼 뭔가 낫다면 뭔가 빠지는, 뭔가 빠져보인다면 그 덕분에 뭔가 나은 게 있고 말이다. 다만 우리와 영국은 우선순위를 달리 선택해 달리 된 것뿐이고 말이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어서 다른 거란 얘기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