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 21. 왜 판막 치환술이었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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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심장은 1분에 70회 이상 펌프질을 하면서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 없다면 심장 수술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심장 수술은 1958년, 심장과 폐의 역할을 하는 인공심폐기가 보편화된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심장 수술이 시작된 지 2년만인 1960년, 스타 교수는 판막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서둘러 판막 치환술을 개발해냈다. 스타 교수 밑에서 수련 받을 때, 판막 치환술을 어떻게 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일단 환자를 살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눈앞에서 심장 판막 질환 환자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충분한 연구를 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갓 심장 수술이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에 바탕이 될 만한 기본 지식도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스타 교수가 판막 치환술에 대해 ‘임시방편’이라고 했던 것은 그런 의미였다.

판막 치환술 초기에는 와파린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을 받은 환자 5명 중 4명은 혈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스타 교수는 우연히 와파린의 성분을 가진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해병이 온몸에 심한 출혈성 경향을 보였으나 3주 만에 회복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판막 치환술에 와파린을 사용해 혈전 부작용을 해결하고 생존률을 급격히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 뒤로 약 50여년간, 판막 치환술은 판막 질환의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판막 치환술은 충분한 연구를 거쳐 개발된 수술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와파린의 도입은 대단히 획기적이었지만, 평생 약을 복용하면서 그로 인한 출혈성 경향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환자들에게 평생의 굴레가 되었다. 소의 심낭이나 돼지 판막을 이용한 조직판막이 도입되었지만, 와파린을 복용하지 않는 대신 내구성이 떨어져서 주기적으로 부담스러운 개흉술을 다시 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동안 새로운 인공판막이 개발되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보완되었지만, 인공 판막으로 치환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부작용인 항응고제 복용 또는 주기적인 재수술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분명한 한계점을 안고 있었음에도 판막 치환술이 50여년간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하던 시기에 판막 치환술은 빠르게 개발되어 제 몫을 충분히 해 냈다. 그러나 모든 의료 기술이 그렇듯이, 개발 초기에는 ‘생명 연장’만을 목적으로 하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삶의 질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판막 치환술을 넘어선 새로운 술기를 개발하는 것은 판막 질환 분야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였다.

내가 판막 대동맥 판막 성형술로 눈을 돌린 것은 의료 기술 발달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기능의 회복만을 고려했던 예전과 달리, 자신의 조직을 최대한 보존하고 이물질 삽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치환’ 보다는 ‘성형’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심장 수술에 있어서 치환술 대신 성형술에 관심을 가진 것이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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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근 교수 기자 webmaster@jhealthmedia.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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