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상 가계지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불황의 장기화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고 그나마 높은 인플레로 실질가치가 저하하는 이중의 고생은 기업에 비해 가계 쪽이 훨씬 더 심각하다.
이에 더하여 세금은 여러 이유로 늘어나 명목적인 임금상승마저 잠식되고 만다.
그렇다고 다른 경제부문, 예컨대 기업처럼 정책적인 지원이 제공되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합리적인 가계를 편성하는 일이다.
한 여성단체가 소개한 소득별 이상가계지출모형(본지5면)을 보는 느낌은 참으로 그것이「이상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어려운 가계에서도 합리적인 지출과 절약으로 저축여력을 길러 낼 수 있다면 이는 곧 가계재산형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투자능력을 배양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명료한 이치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축이 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축여력이 없거나, 아니면 있는데도 낭비되거나 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전자의 경우는 더 이상의 합리화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계는 오히려 부의 저축이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일 것이다.
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근로자 재산형성정책을 내세운 바이므로 실질적으로 그의 가장 핵심 되는 조세정책상의 역행 적인 점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국회에서 일부 거론되고 있는 세법개정 움직임은 따라서 가계보호를 1차적인 관심사로 하여, 고조되어 온 소득세체계의 조정으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세수확보상의 난점을 들고 있으나 이 문제는 수직적인 공평의 제고나 여타세목간의 합리적인 조정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긴축과 절약으로 저축이 가능한 가계의 경상잉여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동원하는가에 있다. 여러 저축전문기관의 조사결과를 빌 것도 없이 민간저축의 가장 큰 결정요인은 소득수준이다. 따라서 저축증대를 위한 노력의 출발점은 인플레 하에서도 실질소득증가를 보장하는 임금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농촌가계의 경우 농업소득이 농업 외의 소득에 비해 저축에 대한 탄력성이 훨씬 높다. 이는 곧 농촌가계의 저축증대를 위해서도 주곡의 가격지지가 불가피한 점을 나타낸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도시 규모가 클수록 평균소득은 높아지나 한계저축성향은 오히려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도시·농촌간의 균형적 개발의 필요성과 연관되는 문제다.
이 가계저축 조사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흥미 있는 결과는 조사가계 가구주의 연령이 40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한계저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곧 우리의 교육비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하다는 현실과 밀접하게 결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가계저축을 늘리기 위해서는 금리정책 외에도 조세·물가정책이나 여타관련정책의 조화가 불가피하다 하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플레의 누진이 가계저축의 근본적인 장애요인이므로 장기적인 물가안정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