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라는데도…몸에 밴 사치·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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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불황이 지속되고 물가고등으로 저마다 주머니를 움켜쥐어야 할 형편인데도 사치·낭비풍조는 날로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철따라 유행따라 새옷을 맞춰입고 애써 값비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6백원짜리 이발을 하고 5백원의 「팁」을 호기롭게 던지는 「샐러리맨」이 있는가하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장식용으로 번쩍이는 「피아노」와 호화판 응접 「세트」로 집안을 궁궐처럼 꾸며놓고 있는 졸부도 있다. 시중 백화점·양품점등에는 고가한 각종 의상과 「액세서리」가 즐비하고 고급 요정과 술집은 여전히 흥청대는등 요즘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소비만능풍조의 잡태가 즐비하다. 있는 사람은 있는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너나없이 소비에만 급급, 우리나라는 동남아 각국과 비교할 때 저축율 하위의 「소비왕국」으로 부상하고있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소비 지향적 사지풍조에 젖어가고 있다. 정부가 물자절약운동을 범국민적으로 벌이겠다고 공표한 것을 계기로 낭비의 실상을 살펴 필요 이상의 것을 요구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아끼고 저축하는 건전한 사회풍토 마련책을 알아보자.
한국은행이 밝힌 우리나라 GNP(국민총생산) 중 소비지출비중은 75년 상반기의 경우 85.4%, 민간부문이 74.5%, 정부부문이 10.9%로 나타났다. 이는 74년의 76.6%보다 8.8%나 증가한 것. 저축율은 고작 14.6%로 일본의 40%, 대만 26∼30%, 태국은 21∼25%, 「말레이시아」20%와 견주면 동남아 각국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저축율 추이를 보면 72년의 15.6%에서 73년에는 21.9%, 74년에는 23.4%로 늘어났으나 올들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75년도 상반기의 GNP실질 성장율이 6.1%인데 반해 실질 소비 증가율은 6.2%(정부15.6%, 민간5.0%). 부문별 민간 소비증가율을 70년 불변가격 (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실질 증가율)을 기준으로 보면 식료품 5.0%, 음료 16.9%, 연초 8.6%, 가구시설 10.7%, 가계 잡지출 10.2%, 교통·통신 7.2%로 음료와 가구 시설부문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불황이 닥치면 그만큼 소비수준을 낮춰 저축율은 유지하고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불황이 올때마다 물가 상승률이 은행금리(15.0%)보다 훨씬 높은 것을 고려, 「인플레」대책으로 물자를 확보해 놓는 이상 현상으로 소비수준은 오히려 높아가고만 있다는 것.
계수상의 문제는 덮어두고라도 우리 주변부터 살펴보자. 소비왕국의 불명예가 오히려 당연한 느낌이다.
술집마다 초만원을 이루는 주점가의 밤 풍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해도 요즘 대낮 명동 거리를 물결치듯 흘러가는 오색옷 차림은 가히 호화 「패션·쇼」를 방불케한다.
섬유류 수출부진과 함계 최근 시중에 번창하는 보세품 「센터」도 주부들로 발들여 놓은 자리조차 없다. 비교적 헐값에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잇점이 있으나 그 때문에 필요없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마구 사들이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 것.
30여종의 각종 「아이스크림」과 「콜라」「사이다」등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냉장고 안이 비어있으면 창피하게까지 여기는 가정을 얼마든지 가까이 찾아 볼 수 있다. 1주일에 「콜라」2 「박스」씩(48병)을 마셔치우는 「콜라」가족이 늘고있는 것도 요즘의 일. 없는 처지에 외상술을 마시면서도 3천∼5천원의 「팁」을 푼돈인양 내던진다던가 2평짜리 좁은 마루에 어울리지도 않게 기십만원 짜리 「샹들리에」를 밝혀야 하는 허세 등은 그래도 애교나 있다고 할까.
2만원이면 족한 딸의 혼수용 한복을 마다하고 굳이 동양화가의 그림이 수놓인 치마폭 한 벌 30만∼40만원이나 주고 사입혀 시집보내려들고 있는 부모나 옷을 지어 입기도 황송한 고급양복지로 실내벽을 온통 도배하려드는 두려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라기 보다 실로 비극적이랄 수 밖에 없다.
보석 밀수·재산해외도피만큼이나 우리사회에 이로울게 없는 무모한 사치풍조의 추방에 다같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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