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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제는 합리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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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봉급자에 대한 세금은 매우 무자비하다. 기업은 적자를 보거나 큰 이재가 생기면 감세나 징수유예를 해주지만 월급봉투에 대해선 가차없이 세금을 원천징수 한다. 가계에 적자가 나든, 세금을 내고 나서 당장 끼니가 곤란하든 상관이 없다. 건전한 가계의 보호육성이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의 보장은 아직 고려되지 않고 있다. 세제면에서 가계는 전혀 무방비상태인 것이다.
월급봉투에서 세금을 미리 떼면 징세도 쉽고 또 한 푼의 탈세도 없으니까 세원으로 너무 애용하는 것 같다. 사실 월급봉투에 걸리는 세금은 대추나무 연 걸리듯이 많다. 맨 처음 근로소득세가 붙고 다음 주민세(소득할)와 방위세가 부가되며 좀 있으면 국민복지연금도 한몫 낀다.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다는 점에선 봉급자만큼 애국자가 없다. 「호남전기」의 탈세액 55억원은 월 7만원이하 봉급자가 금년에 내는 총근로소득세보다 많다. 때문에 봉급자로부터 거두는 세금은 항상 목표초과달성 이다. 71년엔 3백86억 목표에 4백65억, 72년은 3백97억 목표에 4백76억원을 거두어 목표를 20%나 초과달성 했다.
73년 5백46억 목표에 5백40억원을 거두어 목표에 미달했을 뿐 74년엔 2백87억 목표의 2배가 넘는 6백31억원을 거두었다.
75년도 당초 목표 2백99억은 이미 6월말로 달성하여 추경에서 목표를 6백66억원으로 끌어올렸다.
74년 세제개혁을 할 때 봉급자에 대한 세금혜택을 더 넓히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는 세수결함을 내세워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금년 실적은 당초 목표의 2배가 넘을 전망이다. 금년 들어서도 물가고에 가계가 어려우니 월급봉투에 대한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도 정부는 또 세수감소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의 세출에서 한푼도 깎을 수 없기 때문에 봉급자의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세금은 깎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봉급자를 위해선 한푼의 세금도 깎을 수 없다던 정부가 관세법개정으로 관세감면폭을 넓혀 2백억원의 세금을 경감해줄 것을 결정했다. 건설초기의 기업자금사정을 돕고 건축경기를 올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기업육성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가계의 보호도 국민경제의 지속적성장과 장기적인 사회안정 및 문화발전을 위해서 긴요하다는 것을 너무 외면하는 것 같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금년 초에 그토록 떠들던 근로자재산형성법이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배당이자에 대한 세금은 금액에 관계없이 5%인데 비해 봉급소득은 최고 70%까지 누진적으로 올라간다. 봉급자들이 세금과중으로 자주 불평하는 것은 근로소득세 그 하나보다 다른 세금의 무거움을 호소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모든 세금은 최종적으론 가계에 전가된다고 보아야 한다.
연간 40∼50%씩 느는 조세증가율은 모두 가계의 부담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다소 덜기 위해서 근로소득세를 줄여달라는 것이다.
현 세제가 종합소득세 체제로서 응능부담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 세수는 간접세 위주이기 때문에 응능부담이 되려야 될 수가 없다. 결국 세금을 많이 거두고 그것이 생산적 지출로 환원되지 않는 한 국민경제는 그만큼 압박을 받게 마련이다.
기업은 가격을 올리거나 확대재생산을 줄여야 하고 가계는 재산형성과 문화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비공개법인에 대한 40%의 법인세율은 기업이 재투자를 하기엔 가혹할 정도로 높고 또 이런 가혹한 세율 때문에 탈세가 상습화되는 것이다.
사실 현 세제는 너무 징세에 치우친 감이 있다. 한번 문 세금에 다시 세금을 거는 방위세는 비상세제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영업세도 중복과세 된다. 영업세는 총 외형에 걸리는 세금이다.
그러나 외형엔 이미 물품세 등 소비세가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영업세는 세금에 세금이 걸리는 것이다. 영업세에 탈세가 잦고 또 말이 많은 것도 이런 세금부담의 과중에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영업세는 결국 가격에 전가되기 때문에 영업세의 과중은 물가상승을 낳을 수밖에 없으며 적자를 봐도 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정신없이 늘어나는 지방세도 완전히 증세위주다. 재산세의 경우 「인플레」로 명목가치만 올랐는데 세금은 엄청나게 나온다.
정부에서 자의로 정하는 부동산시가표 조정만으로 금년 재산세를 근 2배로 올려놓았다. 가계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또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내는 취득세나 등록세도 마찬가지다. 3백만원 짜리 집을 팔아 5백만원 짜리로 옮긴 경우 이미 3백만원 짜리를 살 때 모든 세금을 다 냈는데도 다시 5백만원 전액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가계가 곤란하여 5백만원 짜리를 3백만원으로 줄여가도 3백만원에 대해 몽땅 세금을 내야 한다.
억울한 느낌이 안들 수 없다.
세제는 단지 세금을 거두는 수단 이상의 큰 의의가 있다. 이는 국민경제의 「패턴」을 결정하고 국민생활과 사회제도 또 풍습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금의 영향은 그만큼 무섭다. 그런데도 세금을 증세와 편의위주로만 거둬들일 때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인 해악은 치명적인 것이다.
세금은 가계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 국민경제의 소망스러운 방향, 장기적인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교육·문화에의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세제가 증세를 위한 「테크닉」으로 타락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정부가 이를 모르고 남용할 때 더욱 그렇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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