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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지으면 사회악인가" "저희도 정말 미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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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거론한 ‘천송이 코트 온라인 구매 문제’를 다룬 본지 3월 14일자 B3면(윗 사진). 회의에서 상영된 ‘기업 애로 동영상’에는 본지 3월 19일자 1면 갈라파고스 규제 보도가 소개됐다.

“관광숙박산업이 유해산업이면, 제가 파렴치한 사회악이 되는 건가요.”(이지춘 한승투자개발 이사)

 “(한숨을 쉬며) 저희도 정말 미치겠습니다.”(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린 20일 청와대 영빈관. 저녁식사도 거른 채 7시간 동안 끝장토론이 이어졌다. 영빈관은 외국 국빈 연회가 열리는 533㎡(162평)의 넓은 홀이다.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과 민관 160명이 머리를 맞댄 거대한 담론의 장이었다. 돼지갈비집을 운영하는 김미정 사장에서부터 먹거리 이동점포 차량을 공급하는 두리원FnF 배영기 대표 등 소상공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발제에 나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규제를 하는 쪽에선 6개 규제 중 4개만 철폐하면 상당한 성과인 덧셈이지만 규제를 받는 쪽은 0(철폐되지 않은 규제)이 하나만 있어도 전체가 0이 되는 곱셈”이라며 ‘덧셈·곱셈론’을 펼쳤다. 박 회장은 “부분적으로 암세포를 덜어내도 암환자임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중앙일보가 보도했던 ‘천송이 코트 온라인 구매 문제’ ‘갈라파고스 규제’도 화두에 올랐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액티브X(Active X)는 온라인 시장을 저해하는 암적인 규제”라며 “공인인증서가 인감도장이라면 이건 집 열쇠다. 본인확인·결제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 한 대당 400개 이상 설치해야 하는 한국만 사용하는 특이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류 열풍으로 인기 절정인 ‘천송이(드라마 주인공) 코트’를 중국에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게 바로 액티브X 때문”이라며 박 대통령에게 “액티브X를 액티브하게 ‘엑스(X)’쳐 주세요”라고 요청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는 “태평양 외딴섬 갈라파고스처럼 동떨어져 진화한 규제가 많은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규제는 빙산과 같아서 물위에 나와 있는 8%보다 물밑의 92%가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민간 분야 인사들의 ‘이유 있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동안 관계부처 장관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는 고개를 떨구고 메모를 했다.

 부처 간 미묘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온라인 게임업체인 네오플의 강신철 대표가 “게임 셧다운제 도입 후 게임 산업이 위축됐다”고 하자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규제를 존치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게임산업이 국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유진룡 장관이 곧바로 “규제를 폐지하시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라고 받았다. 사회자인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농담조로 “두 분이 따로 가서 말씀하시라”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의 ‘입법 규제’도 도마에 올랐다. 산업연구원 김도훈 원장은 “의원입법은 황사와 같은 존재”라며 “감시하는 제도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은 “앓는 이를 엄마가 뽑으면 안 뽑히지만 할머니가 굵은 실로 뽑으면 금방 빠져나간다”며 “국회가 (규제개혁을 위한) 할머니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금 국회의 입법 환경이 열악하다. CEO들은 여당 의원들을 만나지 말고 야당 의원들을 만나달라”고 주문했다. 토론에 참석한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는 “영국 정부는 2010년 규제총량제를 도입하고 ‘원-인, 원-아웃(한 개의 규제를 도입할 때마다 한 개의 규제를 없애는 것)’ 제도를 ‘원-인, 투-아웃’ 제도로 발전시켜 1조2000억원 상당의 비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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