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자금과 연말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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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화금융동향이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시중자금의 통화질서는 예측을 불허하는 금융동향 때문에 교란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들어 통화량동향은 국제수지사정과 재정수지동향 때문에 커다란 기복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그 주름살은 금융부문의 불안정으로 직결되고 있다. 이러한 불규칙한 변동은 거꾸로 자금가수요를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자금회전율을 떨어뜨려 경제순환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준다.
원칙적으로 통화공급이나 민간여신 공급은 가능한 한 규칙적이어야 하며, 그래야만 민간부문이 이룰 전제로 해서 안전한 자금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러한 일반론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는 통화량 및 국내여신공급을 민간부문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도록 안정화시켜야 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0월 중의 통화량 및 국내여신이 준 것과는 반대로 11월과 12월 중에는 1천5백24억원 규모의 국내여신이 방출될 것이라 한다. 계절적으로 자금수요가 커지는 시기에 국내여신을 풀어준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원유가격인상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예년에 없이 조기에 추곡수매계획을 집행키로 한 사실과 앞으로 집행되어야 할 근 3천억 규모의 추가예산 팽창요인을 고려할 때 민간여신까지 풀어주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깊이 생각할 문제점이다.
물론 지나친 긴축으로 부도율이 높아지고 사채이율이 급속히 상승하여 금융기관의 지준부족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는 지금, 긴축을 더욱 강화하는 데에도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금융을 풀고 거대한 추경예산을 집행하는 터에 추곡수매자금까지 한꺼번에 방출하는 것은 물가안정을 당면지상과제로 인정하는 한 부자연스런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차피 추경예산 집행이나 추곡수매자금 방출이 연말께 집중될 것임은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것이라면, 차라리 9, 10월에 금융을 물었다가 11∼12월에 환수하는 계획을 집행함으로써 각종 증감요인을 안배했어야 옳았을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민간여신 확대·추경예산 집행·추곡수매자금 방출 등으로 구매력이 11∼12월에 집중적으로 방출된다면 원유가격 조정의 여파와 합세해서 물가요인은 크게 축적될 수밖에 없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물가대책회의를 매일 열어서 제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방침은 원인을 방치한 채 결과를 단속하겠다는 문제점을 남기는 셈이다.
물가상승의 원인을 배제함으로써 행정력을 동원하지 않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에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일반론을 새삼 들출 필요는 없지만, 구매력을 일시에 축적시켜 놓고 행정력으로 제가격을 누를 때 물가요인은 결국 내년으로 이월되어 양성화된다는 사실만 다를 뿐 조금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연말을 시한으로 해서 물가억제선을 지키는 것도 행정 편의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나 그렇다고 경제정책 고유의 기준에서 그것이 타당한 방법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말에 각종 자금이 집중적으로 방출되어야 하는 현실적 요청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사후책을 고려치 않고 대폭적인 구매력의 축적을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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