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한국시인이 쓴 「에스페란토」어 시집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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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38년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던 한 한국 시인이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스페란토」어로 된 장편시집을 출간, 상당한 관심을 모았음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58년 「에스페란토」어 학자 이원식씨가 발표한 『한국애 세어운동사』가운데 비슷한 귀절이 있어 한국 「에스페란토」청년연합회가 「에스페란토」세계본부에 조회한 결과 최근 한국시인 정사섭씨(44년 35세로 사망)의「에스페란토」어 시집 『자유시인』(Libera Poeto)의 사본을 보내옴으로써 확인되었다.
이 자료를 제공하는데 적극 협조한 「에스페란토」세계본부의 「울리히·린스」씨(독일인·「엔사이콜로피디어」편집장)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주요 문학작품들이 「에스페란토」어로 번역돼왔고 창작저서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으나 정씨의 장편서사시 『자유시인』은 문학의 가치로서 30년대의 창작시집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있다는 것이다.
한국 유일의 「에스페란토」어 저자인 이 시집을 우리말로 완역, 출판을 준비중인 김삼수 교수(숙대·경제사)의 조사에 따르면 정씨는 1910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배재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대에서 법학을, 동경대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후 중국을 거쳐 「파리」에 유학한 당시의 한국인으로서는 문제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의 김억 등의 활발한 「에스페란토」운동에 영향을 받은 그는 경도대학 재학시절 그곳의 「에스페란토」운동을 주도했으며 당시 「파리」에서 「에스페란토」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그의 「에스페란토」이름인 「단·티리나로」(Dan Tirinaro)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4장 l백5편에 수록된 시집. 『자유시인』의 성격은 우선 당대로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현실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점은 시 속에서 나타나는 반봉건 등 저항적인 경향으로 쉽게 증명되는데 제1장의 첫 시 『시문』 몇 연을 보면 그런 경향이 두드러져 있다.

<이 시문을 열려는 이여 낡은 세상의 모든 규범을 버리라 이성인이 이 시가에 사노니. 틀에 박힌 생활의 속박을 저항인이 사노니…> 또한 독수리 사자 호랑이 이리 코끼리 여우 등 동물원의 여러 동물들이 해방을 갈구하는 모습을「리얼」하게 묘사한 것은 풍자시인으로서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추규웅 기자>

<에스페란토>
1888년 「폴란드」의 의사 「자멘호프」가 「유럽」91국어를 토대로 만든 국제어. 「에스페란토」어가 목표하는 바는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 그리고 하나의 국제어와 개개의 민족어로 이룩되는 「인류인」주의의 실현이다.
l905년 「프랑스」에서 제1의 세계 「에스페란토」대회가 개최된 후 현재는 세계 모든 나라에 협회가 있으며 회원 총수는 l억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06년 고종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16년부터 시인 김억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그 후 이광수 홍명희 신봉조 등이 가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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