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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 이야기들(1479) 제47화 전국학련(91)|나의 학생운동 이철승|군부좌익잔당 여수에서 반란|경찰·학련 관계자들 색출, 길바닥에서 총살|학련·독청등 모여 대책회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48년 10윌19일 밤11시.
반도남단 여수에서는 여수주둔 14연대 병력이 반란을 일으켜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을 벌였다.
14연대는 48년5월 창설때부터 문제가 있던 연대.
당시 국군은 속칭 일군파·만군파·광복군파·학병파 그리고 지원병파가 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미군정 말기부터 「하지」의 지원을 받은 「족청」 세력이 신생정부에서도 중요한 권력을 장악하자 대거 군부에 들어갔고 특히 항일반탁투쟁에서 제외됐던 상당수의 회색분자가 가세했다.
그 대표적인게 오동기소령·이종옥소령등 남노당 「프락치」들.
찬탁과 단정단선반대에 실패한 공산당은 남노당에 군사부를 설치하고 이재복을 책임자로 군부적화를 노렸으며 14연대장오동기도 바로 그러한 인물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14연대장으로 부임하자 예하병정에게 은근히 「러시아」10월 혁명을 가르치며 인민해방군의 꿈을 키웠다.
이러한 그의 음모는 곧 발각되어 처단됐다.
그러나 그의 점조직 이었던 김지회중위·지창수상사등은 그대로 남아 좌익세력을 불식해갔다.
온상지가 바로 14연대 1대대. 그런데 공교롭게도 14연대1대대가 제주도 4·3폭동잔당의 소탕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이 출동명령을 곧 무력봉기의 기회로 삼았다.
이윽고 19일 밤11시쯤 여수부두엔 그들을 실어갈 LST함정이 입항했다. 어둠을 가르는 함정의 불빛이 유난히 파도에 넘실댔다.
이때 주모자 지창수가 고함쳤다.
『여러분! 지금 저 함정은 우리를 실러온게 아니라 소탕하러 왔다. 우리 뒤에는 또 하나의 부대가 우리를 소탕하려 진격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신월리 뒷산에서는 총성이 콩볶듯하여 수없는 신호탄이 밤하늘을 날았다.
병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이때 진짜 주모자 김지회중위가 또다시 고함쳤다.
『여러분! 같은 동포끼리 왜 총질을 합니까. 지금 북한 인민군은 38선을 돌파, 남하중에 있읍니다. 이승만은 이미 일본으로 도망쳤읍니다』 『우리 애국동포에게 총을 쏠것이 아니라 악질 반동분자들을 제거합시다.』 삽시간에 병사들은 폭도로 변했다. 이날 이대통령이 일본에간 것은 「맥아더」장군의 초청으로간것. 신호탄이 난것은 그들의 사전 각본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대로 속아 총부리를 거꾸로 대어 반란을 일으켰다.
최초의 주모자는 40여명뿐이었다. 그러나 종내는 전대병력이 가담하는 대군이 됐다.
이들은 즉시 우익장교20여명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시내로 전진했다.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유린했다.
여수경찰은 임현모 최봉재 차상준 장세호등 여수학련생까지 합쳐 방어선을 폈다. 그러나 중과부적. 다음날새벽3시쯤엔 전 시내가 반군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즉시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우익인사의 색출에 나섰다. 그 주모자는 이용기 박채영 송욱 전목윤 문성휘등 좌익골수분자들. 그들은 우선 경찰·학련·대동청년단원등을 샅샅이 뒤져내어 길바닥에서 총살했다.
호남의 갑부이며 덕망가인 김영준씨(당시 천일고무사장)도 그 희생자의 하나.
이 여수·순천 반란사건은 신생정부가 생긴지 두달 나흘만에 터진 것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일본에간 이대통령은 급거 귀국하고 주미정사(현 대사)장면, 특사 조병옥은 이 사실을 미국무성에 진정하고 휴회중인 국회는 임시국회를 소집(10월27일) 대책을 따졌다.
국무총리겸 국방장관 이범석, 참모총장 채병덕, 참모장 정일권등 군 수뇌가 현지에 급파됐지만 반군의 세는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시중의 여론이 빗발쳤다. 반군이 곧 북상 할것이라는 풍문이 돌아 전주∼순천간, 철길조차 끊어버렸다.
이박사는 국애국단제대표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아마 그때가 23일께. 중앙청 제1회의실엔 전국 학련·대청·독청·서청·국청등 각 애국단체 대표가 모였다.
정부측에선 이홍석총리겸 국방, 윤치영내무, 안호감문교장관등이 참석했다.
전국학련에서는 나와 신동희 리덕원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대통령이 나타나질 않았다. 좌석이 술렁거렸다.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왜 대통령께서는 안나오십니까?』 이범석총리가 나와 무마하려했지만 잡아지지 않았다.
경무대 비서진이 왔다갔다하더니 약30분후 이대통령이 입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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