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간부가 사기대출 주범 도주 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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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들이 짜고 벌인 1조8335억원(미상환금 2894억원)의 사기 대출 사건에 금융감독원 간부가 연루된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협력업체 대표들을 도운 혐의로 금감원 자본시장조사1국 김모(50) 팀장을 소환 조사했다고 19일 밝혔다.

 김 팀장은 지난 1월 금감원이 대출사기 사건 조사에 착수하자 저축은행 감사국 박모(49) 팀장을 통해 조사 내용을 파악한 뒤 이 사건에 연루된 중앙티앤씨 대표 서모(47)씨에게 전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1월 말과 지난달 초 서씨와 두 차례 만나 ‘대책 회의’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박 팀장을 두 차례 소환 조사했다.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할 지에 대해 수사할 방침이다.

 2005년부터 고향 선배인 김 팀장과 알고 지내온 서씨는 2008년 김 팀장에게 3박4일 일정의 필리핀 원정도박 향응을 제공했다. 또 자신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의 112만3966㎡ 대지(34만 평·시가 230억원)의 지분 일부(6억원 상당)를 김 팀장에게 떼어주기도 했다.

 경찰은 김 팀장의 도움으로 주범인 엔에스쏘울 대표 전모(48)씨가 경찰 수사 직전인 지난달 4일 홍콩을 거쳐 뉴질랜드로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씨는 현재 뉴질랜드를 떠나 남서태평양 섬나라인 바누아투공화국이나 제3국에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자체 감찰을 통해 김 팀장의 비위를 적발하고 직위해제했다. 서씨와 전씨는 대출금 미상환금 2894억원 가운데 300억원을 아파트·호화 별장 등 부동산을 사는 데 사용하고 사업체 인수비용 등에 썼다.

 경찰은 KT ENS 기획영업부 부장 김모(51·구속기소)씨와 협력업체 대표 등 8명을 구속하고 중앙티앤씨 경리직원 등 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KT ENS는 법인 인감 도장을 책상 위에 놓고 아르바이트생까지 꺼내다 쓰는 등 허술하게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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