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규제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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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자 우리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이른바 「도피성 위장이민」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이민관계법규를 통합, 통일된 해외이주법 규정의 제정을 서둘러왔던 것이다.
보사부가 이번에 해외이주심사규정을 새로 마련,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지난 15일부터 시행하기에 이른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규정에 의하면 해외이주 불허대상자는 현직차관급 이상 공무원(사법부도 이에 준함)·군장성·국회의원·국민회의대의원과 그리고 본인 및 그 배우자와 부의 재산이 1억원이 넘거나 연간종합소득이 6백만원 이상자로 돼있다.
이 새 규정은 종전의 해외이주심사기준을 완화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종전의 심사기준에서는 현직은 물론 전직지방장관급이상공무원·군장성·대사·국회의원과 심지어 이들의 자녀와 전직국민회의대의원까지도 이민을 불허했고 또 재산이 4천만원 이상자 역시 이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전의 심사기준을 완화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지도급인사와 고액소득자를 이민금지대상자로서 규제하는 것은 국력의 총집중과 국민적 단합을 꾀하려는 조치라고 하겠다.
해외영토에의 「식민」이 아니라 「취업」이라는 요소가 포함된 이민의 경우, 지도급인사의 해외 이주는 조국을 등지는 도피라 할 수밖에 없다.
도피성이민은 국민의 전반적인 사기를 저하시킬뿐 아니라 정치활동등으로 교포사회를 혼란·분열시킬 가능성도 없지않은 것이다.
그리고 고액소득자의 이민으로 귀중한 재화가 이기적 동기에 의해 해외로 흘러나가는 것도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의사·기술자 등 「고급직능자」의 이민유출도 사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수한 두뇌와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할 우리의 처지로서는 「두뇌의 해외유출」은 소홀히 다룰 문제가 아니다. 유학을 마친 우리의 과학자·기술자들의 상당수가 해외에 주저앉아있는 실정을 깊이 인식하여 고급직능자의 유출을 막아야 옳을 것이다.
바람직한 이민은 농민과 「하급기능직」등의 「집단이민」이라 하겠다. 이들 이민은 우수한 두뇌와 재화의 해외 유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인구 및 자원난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또 외국의 경제개발 등에 이바지하여 국위를 선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흡인력이 강한 미국·「캐나다」·남미지역에선 전기기술자·목공·양복재봉공·자전거수리공·자동차정비공·구두수선공·용접공·TV「라디오」수리공등의 하급기능공의 취업율이 가장 높으며, 또 농업이민이 정착하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의 불황으로 인한 자국실업자 구제 등으로 기능공 취업율이 감소되고 또 농업이민의 경우 1가구. 주 2만「달러」(1천만원)의 정착금이 소요되기에 정부예산으로 뒷받침해주기 어려운 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국은 62년 「해외이주법」이 제정시행된 이후 작년말 현재로 약16만명이 이민갔으나 이중 정부 「베이스」의 교섭에 의해 이뤄진 집단이민은 단 한 건도 없었던 허울뿐인 「이민권장」정책을 차제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이를 시정해야 하겠다.
모름지기 도피성이민은 강력히 규제하면서 농민·하급기능공들의 집단이민·계획이민에 역점을 둔 이민정책을 적극 펴 나갈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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