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파멸」 경고한 문명사가 토인비 교수의 사상과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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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사의 연구』라는 대저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석학 「아널드·조셉·토인비」는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전세계로 시야를 넓혀 새로운 세계사학의 길을 닦은 영국의 역사학자이다.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 어두운 20세기초 「유럽」의 암담한 몰락을 예고할 때 「토인비」는 서구문명이 직면한 도전에 대해 인간의 의지에 의한 응전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사관을 제시했었다. 그는 종래의 국가별·시대구분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문명권의 역사이론을 제시했다. 방대한 자료와 비교연구를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을 30개의 문명권으로 나누고 이 문명권들이 생성·발전·붕괴·해체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상세하게 밝히는 한편 현재까지 살아남은 7대 문명권 중 서구문명은 이미 그 정점을 넘어선 문명으로 서구문명의 잔존을 위해 동서문명의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인비」는 1889년4월14일 「런던」에서 자선단체회원인 아버지와 영국사를 전공한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세어러」가 잠자리에서 들려준 역사이야기는 「토인비」로 하여금 일찍부터 역사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는 1907년 「옥스퍼드」대학 「벨리얼·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하기 시작했다.
1911년 영국고고학원의 연구생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사적을 답사할 기회를 가졌으며 이 유적들은 그에게 역사의 동시대성을 실감케 했다. 그가 「옥스퍼드」에서 「투키디데스」를 강의하고 있을 때 1차대전이 터졌다.
「토인비」는 외무성정보부에서 일했으며 19년 「파리」강화조약에 영국대표단의 중간지역전문위원으로 참석했다. 그가 세기의 명저인 『역사의 연구』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21년 「그리스」·「터키」전쟁 때 특파원 자격으로 「터키」에 갔을 때였다.
27년부터 집필하여 34년에 첫 번째 3권이 출판된 『역사의 연구』는 39년에 4∼6권, 54년에 7∼10권이 나오고 이번에 마지막 2권이 출판될 때까지 무려 34년이 걸린 대작이며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역사의 연구』는 「소머멜」이 요약한 2권의 축소판으로 간추려져 전세계에 25만권이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서구가 붕괴해가고 있다는 위기의 체험에서 현대세계의 구제사관을 피력했다.
그는 55년, 30년간 봉직해온 왕립국제문제연구소장직과 「런던」대 국제사연구교수직에서 물러나 전세계를 여행하며 강연을 통해 세계정부를 제창 옹호했으며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에 몰두했고 국제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미국이 월남전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은 미국에 도덕적인 비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만년의 「토인비」는 보다 예언적이었으며 보다 비판적이었다. 그는 공산주의가 주도권을 잡고있고 서구문명이 쇠퇴과정에 있는 지금 진정한 투쟁은 인간성을 짓누르는 기계문명의 비인간적인 힘으로부터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토인비」는 13년 「로살린드·머리」와 결혼, 두 아들을 가졌고 46년에 이혼, 이해에 그의 조수로 있던 「베로니카·마졸리·보를러」양과 재혼했다.
『역사의 연구』 이외의 그의 저서로는 ▲시련에 선 문명(1948) ▲세계와 서구(1952) ▲역사가가 본 종교(1956) ▲「헬레니즘」(1957) ▲서양에서 동양으로-세계여행(1959).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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