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 선언」 이후의 신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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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틀간 칩거, 「등원」 굳혀>
『정무회의를 먼저 하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17일 아침 상도동 김영삼 총재 댁에서 열린 사무총장·원내총무·정책심의회 의장 등 당 3역 회의에서는 김 총재를 제외한 당 간부들이 「기자 회견→정무회의」아닌 「정무회의→기자 회견」을 통해 등원 방침을 밝힐 것을 진언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나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며 기자 회견을 우선했고 뒤이어 열려던 정무회의는 13명이란 다수 범 비주류 정무위원이 불참해 유산됐다.
김 총재가 기자 회견을 우선시킨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직하다.
첫째는 이날 중 열기로 되어 있는 범 비주류 대회에서의 총재 인책 결의를 사전 봉쇄하려 했던 점. 둘째는 일단 선제 공격을 가함으로써 뒤이어 열릴 정무회의에서 빚어질 이론의 폭을 좁혀보려 했던 점. 세째는 내분 인상을 빨리 씻어 진통이 오래 계속되는데서 오는 국민의 실망을 덜어보자는 점등.
이틀간이나 칩거하면서 칭병 불출했던 김 총재가 등원 결심을 굳힌데는 비주류 측이 반드시 원내에 따라 들어오리라는 판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 총재는 비주류의 인책 공세를 기본적으로 「당권 도전」으로 보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고 이에 맞서는 비주류는 김옥선 의원 자퇴에 대한 인책이란데 명분을 두고 있다.
김옥선 의원 문제에 대한 총재로서의 책임을 내년 5월 전당 대회에서 묻겠다는 것이나 해당 행위자를 단호히 처벌하겠다는 위협 자세는 바로 당권 도전 차원의 범주에서 나온 응사라 볼 수 있다.
『총재를 만난 K·L·P등 중진은 김 의원 자퇴만이 공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그러고 나서는 반 총재 투쟁을 벌이고 있다』『이런 겉 다르고 속 다른 행위자는 이름을 밝혀 매장을 시켜야 한다』는 등 총재 주변에서는 총재 타도에만 뛰어들려는 비주류 측을 비판하고 있다.

<「반 총재」폭 확대될 조짐>
비주류 측은 김 총재의 등원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 김 총재 인책 문제의 매듭, 김 총재의 원내외 대여 투쟁에 대한 구체적 방안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요회 (회장 정일형)와 신우회 (회장 신도환)는 『내년 전당 대회에서 심판을 받겠다』고 한 김 총재의 말을 『그것은 당권 경쟁에 나서는 것이지 신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인책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고흥문 정무회의 부의장은 『총재 책임 문제를 나로서는 거론할 형편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당과 국민에 사과한다면서 내년 5월로 미룬 대목은 미흡하다』고 말해 김 총재 인책 문제에 초연하지만은 않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권 경쟁자로 이미 드러난 이철승 부의장 같은 이가 김 총재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데 비해 화요회 쪽이나 신우회 쪽은 『먼저 김 총재가 지도 노선을 자신 있게 밝혀라. 이것을 못한다면 물러가라』는 입장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등원 문제와 당내 문제는 별개라는 전제 아래 등원 전에 인책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다하더라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년 5월 전당 대회까지 김 총재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갈 속셈이다.
박영록·신도환 의원은 『김 총재가 사퇴까지는 책임을 못진다 해도 당내 각파가 비상 지도 체제를 형성,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내년 전당 대회까지의 집단지도 체제를 부차적인 목표로 암시하기도 한다.
비주류 안에는 김 총재 인책을 놓고 강온 주장이 나뉘어 있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도 견해가 일치돼 있지는 않지만 「반 총재」기치 아래 함께 몰려있기 때문에 김영삼 노선에 대한 견제 폭은 과거보다 확대되어갈 조짐이다.

<원내 복귀엔 별 이견 없어>
비주류 측도 원내 복귀는 이론을 달지 않고 있어 국회 정상화는 곧 실현되리란 관측.
비주류 쪽은 단기 전략으로 의총에서의 총재 불신임안 제기, 총재 노선 불복 서명 등을 정무회의 불참에 이은 제2, 제3타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세는 비주류 일부에서조차 반대를 하고 있고 김 총재에게 치명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싸움은 내연하는 채 장기화되어 총재로서는 시간을 번 실지 회복전을 충분히 시도할 것 같다.
김 총재의 구상대로라면 곧 총무 회담을 열어 빠르면 내주 중에 국회에 들어갈 움직임이다. 등원 후에는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인다는 것이 기본 목표.
신민당 총무단은 당내 소란이 웬만큼 가라앉으면 원내 대책 확정을 위한 의원 총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김 총재 측근의 어떤 의원은 『몇몇 강경한 의원들이 끝내 등원을 거부할지도 모르나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방치할 수밖에 더 있느냐』고 일부 이탈까지 예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등원을 한 뒤에도 비주류 측은 대여 투쟁 등에 있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총재 노선에 대해 어느 만큼 협조할른지는 의문이다.

<「김옥선 파동」이 앞당긴 셈>
주류·비주류간의 인책·공방전은 서로 어떤 명분을 내놓건 이미 내년 5월 전당 대회를 향한 당권 경쟁 제1「라운드」.
어차피 올해 정기 국회가 끝나면 내년 연초부터는 열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왔으며 이번 김옥선 의원 파동은 이를 앞당겨 놓은 계기가 됐다.
주류 측은 비주류 측이 이번 기회에 연합 전선을 형성해서 『현 지도 체제를 흔들고 있는 것』은 「집단 지도 체제」를 목표로 한 전략의 일부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김 총재를 지지해 왔던 고흥문 의원이 『나를 언제 정무회의 부의장으로 대접했더냐』고 불만을 터뜨려 외형상으로는 비주류 4개 사단 (고흥문계, 이철승계, 신도환계, 화요회)이 김 총재에게 도전장을 보내놓고 있는 셈.
집단 지도 체제 구상은 신민당 내에 김영삼 체제를 대체할만한 「보스」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언젠가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이는 과도기 현상으로 나타나는 체제 구성 방안.
L모 중진은 『고흥문계가 총재로부터 이탈하면 내년의 판도는 달라질 수도 있다』며 그 경우 『신민당의 장래는 극히 어두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한 총재 측근은 『당권을 잡고있다는 것은 1백m 경주에서 70m나 앞서 달리는 격』이라며 체제 변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옥선 의원 자퇴 파동으로 입은 신민당의 상처는 등원을 함으로써 표면상 치유가 되겠지만 이를 계기로 한 당권 경쟁은 훨씬 가열 되어갈 것 같다.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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