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대책의 허실 (5)|남덕우 기획원장관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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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원유가 10% 인상은 기초 「에너지」 가격의 인상이라는 점에서 국내 물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 1년에 44·6%라는 엄청난 물가고를 겪은 만큼, 원유가 10% 인상의 충격이야 대수로울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부는 그 동안 인상 요인이 발생할 주요 공공 요금·공산품 가격의 조정을 원유가 인상 시기로 미루어 온만큼 누적된 요인까지 반영된 물가 조정은 역시 적지 않은 주름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와 형편이 비슷한 이웃 나라들이 이미 안정을 되찾은 것과는 달리 아직도 고율의 「인플레」 속에서 허덕이는 현실에 대처, 우리의 물가 정책 방향은 어떤 것이며 안정 기조의 회복을 위한 대책은 어떻게 강구될 것인지 남덕우 경제기획원장관에게 물어봤다. <편집자주>
물가 정책의 기본 방향은 물가를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데 변함이 없다.
OPEC (석유수출국기구)의 원유가 10% 인상에 따른 국내 물가의 조정에서도 이 같은 기본 자세는 지켜질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 안정 기반을 구축한다는 방침 아래 일단 연내에 인상 요인을 안고 있는 품목이나 요금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조정을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조정 대상이나 조정책은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정부의 발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기 바란다.
다만 물가를 시장 기능에 맡기고 인상 요인이 있는 품목에 대해 가격을 조정한다고 해도 인상 요인이 실제로 얼마냐 하는 문제는 어려운 문제며 업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도 아니다.
더우기 인상 요인이 없거나 경미한 품목에 대해 편승 인상이 거듭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인상 요인이 큰 항목에 대해서만 타당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현실화될 것이다.
국제 「인플레」 압력이 상당히 해소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상대적 안정을 회복하는 시점에서 우리 나라만 물가가 계속 오른다는 비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과거 불가피했던 인위적 물가 규제로 뒤로 이월된 상승 요인이 최근에야 현재화되었다는 사정도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물가 조정을 통해 이 같은 요인은 거의 해소될 것이므로 내년부터는 새로운 기반 위에서 물가 정책을 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년도 물가 전망은 12%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물가 억제 목표 달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2조원을 넘어선 내년도 예산 규모가 지나친 팽창 예산으로 재정 「인플레」의 우려를 안고 있다는 비판이 있으나 내년도 예산은 자주 국방의 기반을 조성하고 서정 쇄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비상 예산으로 이해해야 한다.
재정 규모 확대에 따른 「인플레」 위험은 통화·금융의 긴축으로 다스려 나가겠다.
다만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실업 문제가 있으므로 긴축 정책을 쓴다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중간 노선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실업자들의 고용 문제를 안고 있으며 기업들도 「오일·쇼크」의 타격과 수출 부진 등으로 재무 구조가 약해져 긴축에 대한 내구력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 수지도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대외 거래는 하반기에 들어 다소 호전되고 있기는 하나 9월말 현재 수출 실적은 연간 목표 대비 60·9%에 불과한 실정이다.
세계 정제의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국제 수지 방어는 내년에도 문제점을 지니게 될 것이다.
정부는 현재 경기와 국제 수지를 포괄하는 대책을 검토 중이며 국제 수지 불균형에서 오는 「갭」을 국내 저축 제고로 메워나갈 방침이다.
국내 저축의 제고 방안은 현재 다각적인 검토가 진행 중이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
일반 저축을 확대하기 위한 유인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문제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내년도 성장 목표를 8%로 잡은 것은 고도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정부가 추진중인 긴축 정책과 국제 수지 방어 정책을 병행해 가면서도 무리 없이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성순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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