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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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옥선 의원의 발언과 의원직 사퇴에 대처하는 신민당의 자세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지적을 면키 힘들다. 그것은 김 의원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던 즉흥적인 의원 총회 결의의 무실만을 탓해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김 의원 자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신민당 안의 자중지란에 더 큰 이유가 있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의 의원직 사퇴라는 불행에 처하여 야당 인사들이 느끼는 자기 모순이나 심리적 갈등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 야당으로서의 자기 반성과 앞으로의 진로를 개척하는 진통이라면 마땅히 겪어야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신민당의 동요는 이러한 것을 넘어 당내 비주류의 김영삼 총재와 당 집행부에 대한 치열한 책임 추궁은 당권 투쟁적인 성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정치인들의 분파적인 행동이나 당권에 대한 집착을 무조건 탓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파 작용이 자기의 당 자체를 손상시킨다면 이 어찌 책임 있는 정치인이 취할 태도이겠는가.
지금 신민당은 국민의 신뢰의 회복과 스스로의 역할 정립, 그리고 김 의원 파동의 상처 극복 등 여러 난제를 안고 있다. 우선은 이러한 난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루고 당권 투쟁이나 일삼는다면 형전 (가시밭)속의 투구처럼 모두가 상처만을 입고 말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신민당 의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각자가 모두 뼈아픈 자기 반성을 통해 굳게 하나로 뭉치는 일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물론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요구되지만 스스로 그러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이 행여 있다면 잘못이다.
이번 사태와 이 사태 해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의 최고 지도자인 김영삼 총재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실 지난 17일 기자 회견까지 김 총재의 침묵과 책임 있는 행동의 결여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야당의 지도자로서 김 총재의 책임은 큰 것이지만, 이번 사태를 놓고 야당의원들이 총재에게만 책임을 추궁하는 태도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운명을 같이하겠다던 것은 김 총재뿐 아니라 모든 야당 의원들의 결의가 아니었던가. 이 결의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저마다 토로하는 용기와 책임 추궁은 그 정당성에 의문이 간다.
민주 정당에 분파란 있기 마련이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분파 작용은 자제되는 것이 소망스럽다. 이 싯점에서 신민당의 내분을 바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야당이 더욱 일사불란하게 단결하여 국민에게서 부하된 책임을 다하는데 힘써야 할 때다. 당내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풍토는 고양해야겠지만 조용히 추진해 당의 체통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민당의 모든 활동이 결국 원내 활동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 의원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 이상 국회를 외면하는 처사는 엉거주춤한 체면 놀음일 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체면이나 명분에 집착하기보다는 부족한대로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성실한 태도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김 총재의 등원 결정은 현실적이다.
야당은 2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 심의를 비롯해 국정 비판에 더욱 성실히 참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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