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카르」 냉대하는 「브레즈네프」|불-소 정상 2차 회담 연기의 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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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중인 「발레리·지스카르-데스텡」 프랑스 대통령은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냉대를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르·몽드」지를 비롯한 이곳의 신문들은 일제히 이 뜻밖의 사실 (?)을 보도하면서 「드골」「퐁피두」가 다져놓은 불·소 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르·몽드」가 『「모스크바」의 경악』이라고 표현한 「브레즈네프」의 푸대접은 지난 15일 하오로 예정된 「브레즈네프」-「지스카르」의 제2차 회담이 소련 측의 요청으로 돌연 연기된데서 발단됐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연기 이유라는 것이 『「모스크바」의 이례적인 쾌청한 날씨 탓』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지스카르」 대통령의 방소는 알송 달송하게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소련 당국의 협조로 붉은 광장에서 직접 우주 중계된 「프랑스」 국영 TV와의 회견에서 「지스카르」는 『소련 측이 결정한 「스케줄」 변경에 동의했다』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연기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등장한 추리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건강 악화설이다. 이는 지난 14일에 시작된 이번 방문에서 「지스카르」 대통령은 「민스크」에 가고 싶다고 말해 사전에 교섭을 벌였으나 「브레즈네프」의 건강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으며 또한 지난 14일 1차 회담에서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날씨 탓이라고 설득력 없는 연기 이유를 대는 이면에는 양국 지도자간에 의견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는 사실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지스카르」가 도착한 날 저녁 「브레즈네프」와 「지스카르」는 각기 연설을 통해 「데탕트」 문제를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브레즈네프」는 『「데탕트」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세계적인 현상일 뿐이다』라고 밝힌데 대해 「지스카르」는 『「데탕트」는 「이데올로기」 경쟁에까지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응수했던 것이다. 「지스카르」는 「헬싱키」 헌장 조인 후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서방 지도자다.
만찬 석상에서의 이견에 「브레즈네프」가 만족할 수 없을 것은 명야관화한 일이다.
이 설전은 「이데올로기」 투쟁 뿐만이 아니라 군비 문제에서도 이견이 드러났다. 「브레즈네프」는 『「데탕트」는 군비 경쟁에서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지스카르」는 『군비 분야에 대한 「데탕트」는 「프랑스」 한 나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고 반격 (?) 해 버린 것이다.
「크렘린」 지도자들은 「지스카르」의 연설이 천만 뜻밖의 반격이라고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여년간 소련은 독일 「베를린」 문제 등 「유럽」 문제에 있어서 「드골」「퐁피두」 등이 이끌어온 「프랑스」와 보조를 같이해 소련이 「데탕트」의 기수라면 「프랑스」는 서방에서 「데탕트」의 개척자적 역할을 함으로써 밀월과 같은 우애를 유지해왔던 게 사실이다.
소련 지도자들은 「프랑스」를 독립성이 있는 서방국이라고 추켜 올려왔다.
그런데 「지스카르」는 「드골」이 탈퇴한 「나토」에 「업저버」를 새로 파견하는 등 친대서양 동맹국으로 기울고 더욱 과거와는 달리 미국과 불화는 거의 없는 등 친미 경향을 보여 소련이 불안을 느껴왔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이것이 더욱 만찬 연설에서 뚜렷한 이견으로 드러나자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필요가 「크렘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지배적 해석이다.
애당초 「지스카르」의 방소는 내용이 없었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어쨌든 계획은 「에너지」·항공 산업 및 관광 등 3가지였다.
관심은 「지스카르」에 대한 소련측의 영접에 있었다. 「브레즈네프」의 냉담은 「지스카르」의 「모스크바」 도착부터 나타났다고 「르·몽드」지는 보도했다.
환영 관중을 거의 동원하지 않았으며 또 1차 회담 때 「브레즈네프」는 웃음이 거의 없었고 그의 장기인 농담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크렘린」이 2차 정상 회담을 연기시켰으며 「프라우다」지를 통해 때마침 「쉬라크」「프랑스」 수상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는 「쉬라크」 수상이 지난 3월의 「모스크바」 방문을 소련으로 하여금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데 이용하려 했다』고 구문을 새삼스럽게 들춰냈다.
이것은 「브레즈네프」의 「지스카르」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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