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5천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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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구한말에 일본인 관야정이 나귀를 타고 경주 군청을 찾았다. 군수를 만나 불국사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군수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 불국사를 찾았다. 어떤 군수인지, 나라 망신을 도맡은 꼴이 되었다.
여하튼 이와 같이 나귀를 타고 우리의 문화재를 찾은 그는 뒤에 『조선의 건축과 예술』이란 책을 내었다. 그 가운데는 틀린 사실이 많다. 가령 지금 「파고다」 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고려시대의 것이라는 식으로. 그러나 우리는 한국 미술사를 개척한 사람으로 관야정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3·1독립 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일본인 유종열은 잡지 『개조』에 『조선의 친구에게 주는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우리의 예술이 훌륭하다고 칭찬한 뒤, 두 민족은 문화를 통하여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조선과 그 예술』이란 책에서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 자란 한국 예술의 공통적인 특성은 겸허·미소·소박·청초이며, 일본인도 한국을 괴롭힌 사람중의 하나라고 말하였다. 한없는 동정을 나타내며 동화를 바라던 그를 우리가 덮어놓고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한국 예술을 이해하려던 그에게 우리는 두터운 친근감을 느꼈다.
대영 박물관에는 석굴암만이나 한 덩치의 「그리스」 신전이 놓여있다. 「그리스」문명이 기둥 째로 뽑혀 옮겨진 셈이다. 이런 비애는 우리에게도 무수히 있었다. 일본인에게 약탈되어 그 행방조차 모르는 문화재가 얼마나 많았던지, 지금 일본인 사이에서는 한국엔 명품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번에 우리는 일본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국보 44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중요 문화재 2백여점을 반출하여 동경·경도·복강 등지에서 「한국 미술 5천년전」을 열도록 하였다. 빼앗기고 남은 물건인지, 어쩌다 화를 면한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좀처럼 한자리에 모아놓고 볼 기회가 없는 값진 문화재들이다.
2차 대전 때 백악관에 머무르고 있던 「처칠」은 「루스벨트」가 그를 찾는 소리를 듣고 벗은 채로 나타났다. 그는 웃으면서 『대영 제국은 미국 대통령 앞에서 이와 같이 숨길 것이 없읍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도 소중히 간직한 문화재를 일본 국민에게 숨김없이 내보이기로 한 셈이다.
우리 문화재를 해외에 전시하기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박사 때, 구미 몇몇 나라에서 빌어간 일이 있으며, 그 뒤 일본에서도 몇점씩 선을 보인 일은 있지만 이와 같이 크게 연 일은 없었다. 우리 조상의 얼이 담긴 민족의 유산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로 한 정부의 용단은 바로 우리 국민의 뜻이다.
우리 문화는 크게 보면 일본과 같은 문화권에 속하지만 뚜렷한 특성이 흐르고 있다. 문화를 사랑하는 일본 국민이 모처럼 안복을 누리고 자신의 문화와 비교하며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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