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국회의 본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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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8일 국회에서 신민당 소속 김옥선 의원의 체제 비판 발언으로 소강 상태를 유지하던 정국은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여당은 김 의원의 문제 발언을 「이적행위」로 규정, 김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한다는 강경한 방침을 세워 10일 법사위에서 이를 처리, 본 회의에 회부했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소속의원 전원이 김 의원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대응 결의를 표명하고 실력저지에 나섰다.
따라서 이러한 대치 상태가 해소점을 찾지 못할 경우 국회의 운영마비와 정국의 경화를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러한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야한다.
2조억원이 넘는 방대한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다루어야할 이번 정기국회의 마비나 총력안보 태세가 요구되는 이 시기에 정국 경화란 결코 있어선 안되겠기 때문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이 진통을 수습하여 정상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전문된바 여당 측이 문제삼고있는 김 의원의 발언내용은 시기적으로나 표현 상 지나쳤다 싶은 부분이 착취되는게 사실이다. 모름지기 공인인 정치인은 공적발언에 있어 그 발언이 대내적으로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옳을 것이다. 야당 의원으로서 개인적인 느낌은 어떻든 간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했을 경우의 대내외적인 득실을 깊이 생각하는 신중성이 요구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이러한 신중성이 더욱 요청된다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김 의원의 발언에는 여당 의원들을 크게 자극할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당의원들뿐 아니라 충격을 받을 사람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발언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이 여당 측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원내 발언 때문에 국회 의원을 제명까지 해야하느냐는 것은 극히 신중을 요하는 문제다. 제명이 몰고 올 정국의 파란이 명백한 만큼 더욱 그러하다.
우리 국회는 27년여의 헌정사상 소속의원을 제명한 적이 없다. 경위한 징계의 경우에도 징계안이 수10회 제기되었지만 실제로 징계결의가 된 것은 불과 수3회에 불과했다. 이렇게 가급적 동료의원에 대한 징계를 피해온게 우리국회의 관례였다. 특히 원내발언을 이유로 한 징계는 피해왔던 것이다.
헌법상 국회의원의 원내발언에 면책특권이 부여된 것은 원내발언의 자유가 특별히 보장되어야한다는 의회 정치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다.
긴급조치 9호에서도 이 특권은 계속 보장되고 있다.
국회가 있고 여야당이 존재하는 민주국가는 다수 의견 뿐 아니라 소수 의견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견을 여과·용해하는 기능을 갖는 곳이 바로 국회다. 여기에 원내발언 면책특권의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소수당에서 제기되는 웬만한 말썽이나 거슬리는 소리를 대국적 견지에서 다루는 것이 다수당의 바람직한 태도인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면책 특권이 원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지 원내에서까지 무책임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의원이 원내에서 일반국민 보다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취지는 분명한 것이다.
그러니 여당으로서는 김 의원의 발언을 「이적행위」로 생각한다면 지나친 발언이 다시는 야당 측에서 제기되지 않도록 하는 정치적 해결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흔히 의회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고들 한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문제야말로 여야간 폭넓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려는 지혜가 더욱 요청된다 하겠다.
이 문제 때문에 작년과 같이 예산국회의 공전과 파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야에 촉구하는 바이다. 지금은 예산국회의 본령에만 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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