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공개의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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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 공개 정책은 일반적인 권유의 단계를 넘어서 이제 행정적인 최고에 의존하는 강제공개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재무부는 1백5개의 공개 대상 기업체를 선정하고 그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이들 기업은 원불원 간에 기업을 공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업의 재무 구조 개선책과 증시 육성 그리고 국민의 기업참여 조장이라는 명분을 이 시점에서 마다할 국민은 없을 것이나 왜 기업공개 작업이 뜻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느냐를 깊이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공개 기업에는 세제상·금융상 막대한 혜택이 주어지고 있으니 정상이라면 다투어 공개하고자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주저하고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행정력을 행사하기 전에 공개 저해 요인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이 신중한 정책 집행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강제 공개가 불가피하게된 이유가 분명해져야 하겠다. 기업주의 이기심이 너무 강해서 강제공개가 불가피하다면 강재 공개의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기업공개가 지연되는 이유가 그 것과는 딴 데 있는 것이라면 그 같은 강제가 조급한 결정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 다음으로 기업주의 이기심을 어떤 기준에서 「체트」할 것이냐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실질 자기 자본 비율이 높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 자기 자본이 사실상 없는 기업의 경우다. 전자의 경우 기업공개가 창업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희생시키는 결과가 된다면 공개를 주저할 수도 있으며, 이를 지나친 이기심의 발로라고 무조건 나무라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업의 공개에 있어서는 기업주와 공개 주식에 대한 투자자의 이익에 조금도 기울어짐이 없도록 정책은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실질 자기 자본이 무시할 정도로 적거나 사실상 없으면서 기업 공개를 주저하는 경우에는 일단 해당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경영주를 대체시킨 연후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들 기업의 재무 구조는 정상적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공개해서는 아니 될 정도로 취약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내용상으론 기업다운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성급한 공개 보다 먼저 바람직한 것이다.
특히 기업공개를 서두를 때, 외형은 크지만 내용상으로는 부실 업이나 다름없는 기업을 무리하게 공개하면 그 결과 어떠한 문제가 파생될 것인가.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은행 의존도는 높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실질 자산이 은행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이 통례다. 만일 그러한 기업을 공개시키기 위해서 은행에 불 측의 손실을 입히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 배당 능력이 낮은 기업에 대해서 무리하게 공개를 최고 하는 것도 자본 시장의 장래를 위해 진중을 기해야할 것이다.
대부분의 공개 대상 기업들은 외형과 타인 자본이 매우 큰 대신 자본금은 상대적으로 적어 기업 경영에 있어 자기 자본의 역할은 무시할 정도인 예가 적지 않다. 이들 기업은 공개나 증자로 경영이 쉽사리 호전되기 힘들 것인데, 그 위에 주식 할인 발행으로 실질적인 감자 조치까지 하게 된다면 경영 개선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또 할인발행이 불가피한 기업의 주식을 일반 대중이 취득한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이제 어차피 강제 공개의 단계에 접어든 이상 대상 기업들은 최선을 다해서 공개 정책에 협조하여야 하겠으나, 정책당국도 공개를 저해하는 요소를 단계적으로 제거해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모두가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과 다를 바가 없도록 성실하게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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