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제47화 전국학련(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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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방된지 두해를 넘기고 47년의 새해가 밝았것만 시국은 먹구름속에 싸여 있는채였다.
47년1월1일, 각 정파가 발표한 신년사도 각기 달랐다. 한민당은 『반탁과 「얄타」협정의 파기로 독립을 쟁취하자』고 했고 한독당은 『민족의 대동단결로 통일정부 이룩하자』고 주창하는가 하면 남노당은 「모스크바」의 삼상결정대로 남북통일 이룩하자』고 부른 짖었다. 김규식을 비롯한 중간파에서는 『좌우합작으로 통일정부 세우자』고 했다.
이승만박사는 이에 앞서 12월4일 도미했다.
목적은 미정부 고위당국자와 직접 만나 조선독립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이박사가 도미외교길에 오르자 「민통」본부는 민족대표외교후원회를 구성했고 배은희씨등은 이박사외교후원회를 조직해서 자금을 염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입법의원에서는 「민주의원 의장 및 대한민국대표」 자격을 부여해 그의 방미를 뒷받침했다.
우리 학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돈암장에 들렀을 때 이박사는 『미국은 여론의 나라이니 「하지」가 아무리 반대한다해도 미국무성은 조선인의 총의를 무시못할것』이라면서 은근히 학생들이 반탁「데모」에 앞장서 줄것을 암시했었다.
「학련」은 대대적인 1·18일주년기념대회 계획을 짰다.
1·18사건이란 46년1월18일 당시 반탁학련이 정동예배당에서 전국학생 반탁궐기대회를 갖고 좌익기관지 인민보와 인민위원회를 쳐부순데 이어 좌익계 「학통」의 피습을 받아 수명의 동지가 피격받은 사건-.
도미중인 이박사는 『철승군의 사명이 크다. 국내일을 부탁한다』는 전보도 보내왔다.
연일 간부회의를 열고 지부조직 점검, 전단작성, 벽보쓰기와 배분등으로 학련사무실은 철야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기념행사를 이틀 앞둔 1월16일 새벽, 안국동 학련사무실엔 갑자기 미CIC요원 10여명이 나타났다.
인솔자는 미CIC 「정치학생담당」인 「미스터」「슐레브」.
그는 손에 벽보 한장과 수색영장을 쳐들면서 『이철승이 어디있나, 이 벽보는 누가 붙였나?』고 서슬이 퍼랬다. 다행히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
한교영(서울법대) 정국권(성대) 이근희(휘문중·현한양대교수) 안중덕(경기중) 장완형(양정중)군등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으나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붙인 벽보에서 문제가 발단됐다.
벽보에는 『찬탁을 원하는 매국노 타도!』『미군정관리 물러가라!』『즉시 자주독립 만세!』등이 써 있었는데 미군정 통역이 「타도!』를 『타살!』(kill)로 잘못 번역한데서 문제가 생겼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일체의 소요행위를 엄벌하는 미군정이 그 누군가를 타살하겠다니 가만 있을리 없다.
그래서 미군 헌병을 대동하고 나를 잡으러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맹원들이 나의 행방을 가르쳐줄리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자 전원 CIC로 연행해 버렸다. 뒤이어 학련간부 전원에게 검거선풍이 내려졌다.
나는 즉각 대한독립촉성회본부(돈화문앞 한진버스주차장)에 방하나를 빌어 학련의 임시사무실로 정하고 양해준(현국회의원) 육동욱(조폐공사 이사) 박찬홍(도로공사) 김달영(실업) 이병노(경기대강사) 차후재(당시 휘문중·6·25때전사)등에게 1·18기념행사 준비를 계속 시켰다. 그리고는 나만 계동 김성수선생 댁으로 피신, 연행동지의 구출방도를 찾았다.
중간연락은 당시 경기중학생인 이승철군이 맡아서 했다.
그날 밤은 인촌댁에서 잤다.
이튿날 새벽, 급히 계동 골목을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미군「지프」 한대가 내앞에서 급정거했다.
깜짝 놀라 차속을 바라보니 그 안에는 미CIC 「슐레브」와 학련의 선전부장 송원영동지가 타고 있지 않은가.
송동지는 우리 학련에 없지 못할 중견간부. 그는 돈암동 숙부댁에 피신해 있다가 CIC에 잡혀갔고 독촉본부로 긴급피난한 학련사무실로 나를 찾아 나섰던 것.
그러나 서로 내 행방을 모른다고 잡아떼었으나 나이 어린 차후재군이 그만 인촌댁에 있을 것이라고 실토해버려 차를 몰아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슐레브」는 나의 얼굴을 모르니 그냥 지나쳤으면 될텐데 붙잡힌 신세의 송동지가 엉겁결에 『위원장!』하고 불러 그만 탄로가 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짐짓 태연스레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랬더니 『여보시오, 당신 이철승이지-』하며 「슐레브」가 내 옷깃을 잡았다. 섬찟했다. 그러나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슐레브」는 나를 송동지 앞으로 데려가 『이 학생이 이철승이지-』하고 윽박지르는게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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