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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안중근이 순국한 3월 26일엔 '안 의사 추념가'를 다 함께 부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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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오래전 김원·승효상 선생 등 건축가 일행과 경북 북부 고건축 기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현장을 돌아본 일행은 저녁에 짬을 내 안동 병산서원 앞 강가에서 노래 추렴을 벌였다. 좌중을 압도한 것은 승 선생이 부른 국경일 노래 메들리였다.

 노래는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의 3·1절 노래(정인보 작사, 백태현 작곡)로 시작해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의 제헌절 노래(정인보 작사, 박태준 작곡)로 이어졌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의 현충일 노래(조지훈 작사, 임인식 작곡)에 이르자 몇몇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의 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에선 거대한 제창으로 변했다. 이어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의 개천절 노래(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를 거쳐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의 한글날 노래(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로 마무리됐다. 사이사이에 대중에게 익숙한 ‘까치 까치 설날은’의 설날 노래(윤극영 작사·작곡),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아’의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의 어버이날 노래(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도 곁들였다.

  한결같이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문인·학자·예술인·문화운동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국민 노래가 아닌가. 이 땅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노래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아는 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기념식 중계를 보면 합창단만 부를 뿐 참석자 대부분은 듣기만 하는 게 다반사이지 않은가. 심지어 매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추념식에서 부르는 ‘안중근 의사 추념가’(김향운(김락영이란 기록도 있음) 작사, 계정식 작곡)는 학교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실정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김경희 상임이사는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이젠 맥이 거의 끊겨 따라 부르는 이가 드물다”고 안타까워했다.

 일제는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정확히 5개월이 되는 이듬해 3월 26일, 그것도 이토 사망과 같은 시간인 10시에 맞춰 사형을 집행했다. 침략자는 분초까지 되새기며 보복 처형을 했는데 피해자의 후손인 우리는 그 영웅을 기억하는 노래조차 제대로 몰라서야 되겠는가.

 다음 주가 안 의사 순국 추념일이다. 국권침탈과 패권주의에는 목숨 걸고 저항하지만 침략과 무관한 이웃 나라 국민과는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한번 새길 때다. ‘안중근 의사 추념가’를 배워 다 함께 부르면서 말이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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