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불만 폭발…중공 노동자들|군대까지 동원된 항주지방 쟁의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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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항주 등 중공의 일부지방 공장노동자들이 7월중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 혹은 태업행위를 벌였다.
중공당국은 이러한 사태발전으로 마비된 생산질서를 정상화하기 위해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해야 했다.
특히 중공이 최근 단결과 안정을 강조하면서 80년대 말에는 세계 제1의 중공업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경제건설에 총 매진하는 시점에서 이러한「조화의 파괴」가 벌어진 배경은 무엇인가.
중공의 노동자 임금체계는 기본적으로 8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다. 5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이 노동자 임금체계는 노동에 따른 분배(안노 분배)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원칙에 의한 분배방식은 노동의 질과 양은 물론 사상 등을 토대로 인민의 종합적인 토론에 붙여 결정된다.
중공건국초기가 과도기적 사회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사회질서도 과도기적이어야 한다는 모택동의 정치철학에 따라 마련된 것이 이 임금체계인 것이다.
또 중공은 문화대혁명시기까지 혁명의 과격성을 지양하고 점진적인 경제시책을 펴와 어느 정도 농민 노동자들의 자급자족체제를 인정해 왔다.
즉 어느 정도 개인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개별노동자 소유 제와 자본가 소유 제가 구 헌법에 보장되었고 실제로도 문혁 시까지 이 정책은 시행되었던 것이다.
중공은 또 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최근까지 어느 한 부 면에 만 편중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대중생활의 불편을 크게 초래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소련이 사회주의국가로의 초 강국 실현을 위해 대중생활을 희생하면서 중공업정책을 강력히 시행해 왔던 전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이었다.
소련은 혁명이후 40여 년간의 강압적인 중공업정책의 시행대가로 60년대 초반에는 상당한 공업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소련은 노동생산성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또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사태를 맞아야만 했다.
노동자들은 생활필수품의 부족에 대해서 불만의 소리를 높였다. 이래서 나온 것이 65년 「코시긴」수상이 선언한「신 경제정책」이었다.
즉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원칙에 비록 벗어나는 것이긴 하지만 기업경영에 이윤체계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62년「하고리프」대학의「리베르만」교수가 제의한 것이었다.
노동생산성의 저하와 노동자의 불만에 당황했던 소련지도층은 이 원칙을 도입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중공으로부터 수정주의로 나가고 있다는 맹렬한 비난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중공은 문 혁을 계기로 과도기적 생산체제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경제원칙에 따른 본격적인 생산체제를 밟기 시작했다.
그 동안 있어 왔던 물질적 자극원칙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새로운 경제발전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간 중공은, 그러나 임금체계만은 여전히 과도기적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 왔다.
일부 노동자들의 파업권행사는 중공노동자임금세계의 불합리성이 실제로 도사리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등소평 부수상이 최근 고위관리 층의 임금이 노동자들의 수준에 비해서 턱없이 높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데서도 이와 같은 사정은 드러난다.
도시노동자와 농민간의 임금격차·노동자와 비 노동자간의 임금기준설정의 어려운 문제점 및 노동장소간의 임금격차 등 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로 등장했다. 실례로 8등급으로 나눠진 노동자 월급의 최고수준은 1백20원(한화로 약 2만8천원)이나 최하수준은 25원 정도여서 대략 5대1의 비율이라는 것이다.
또 북경의 한 면 방직공장의 최고수준은 1백20원(중공화폐)이나 정주의 면 방직공장은 96원이라는 것.
중공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60원으로 매우 저소득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식주에 큰 불편이 없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안노분배」원칙은 신 헌법(9조) 에도 도입되어 있는데 이는 다분히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자극을 충동질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구 헌법에서 보장되었던 4종류의 생산수단의 소유 제, 즉「전 인민소유 제·집단소유 제·개별노동자소유 제·자본가소유 제」가 신 헌법에서는 전 인민소유 제와 집단소유 제 2종류로 제한되어 개인이 추구할 부의 원천이 사라졌다.
노동자임금체계가 55년 처음 마련된 뒤 모의 지시에 따라 관리 층의 임금을 감봉한 예를 제외하고는 그후 한번도 재조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한 만큼 분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헌법29조에 따라 파업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지난 2월 이미 중공 고위층은 이미「부르주아」권리인정은 반「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이라고 경고해 온 터였다.
최근 중공언론이 집중적으로 중국고전소설「수호지」의 주인공 송 강을 투항주의자라고 비난하고 나서는 것도 대중들이 이와 같은「부르주아」권리에 연연하는 경향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등소평이 밝힌 바와 같이 수천 명의 중간 관리 층 이상이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훨씬 상회하는 임금을 받는다는 것도 모택동의 노동중시사상에 배치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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