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부정확한 행정통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계획의 효율은 그의 기초자료의 정확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통계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진 것은 모든 개발계획의 입안이 그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밀한 실증분석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각종 계획의 기초가 되어 온 우리나라의 행정통계가 몇 개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낙후된 수준에 머물러 그 정확도에서 너무 처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앙정부 안에 통계전담기구도 만들고, 통계법 등 법적 뒷받침도 되어 있으나 보다 과학화·정밀화한 행정통계가 작성 이용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표본조사(본지 9월 20일자) 는 우리의 행정통계가 내포한 근본적인 취약점을 잘 노출시키고 있다.
일선행정기관인 16개 표본 읍-면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상급기관에 보고되는 각종 통계·보고사무 가운데 불필요하거나 부정확한 것이 무려 1백20여종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 통계보고와 관련된 것은 74종으로 대부분이 통계전문가가 아닌 읍-면 직원들이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데다 시간과 인력부족으로 사실과 다른 보고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각종 피해통계나 생산통계는 보상이나 실적을 의식하여 과장 보고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하니 이런 통계의 신뢰도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는 상부관청의 지시내용 자체가 모호하거나 전문가가 아니면 파악이 불가능하여 원천적으로 정확을 기하기 어려운 통계업무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음이 밝혀져 중앙의 지시가 얼마나 비과학적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부류의 통계 중에 농산 업무관계 통계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우리농업정책의 효율성을 크게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이 같은 통계·보고행정의 난맥은 기본적으로는 통계행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앙정부관료들의 지나친 실적주의 행정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일 것이다.
이 조사가 지적한대로 중앙의 정책결정이 신중을 잃어 즉흥적인 사후변경과 추가지시가 빈번한 것도 불필요·부정확한 보고를 유발하는 소지를 이루고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중앙과 지방간의 협의조정이 미흡할 경우 지역적 특수성이나 여건의 고려 없는 획일적인 계획이나 지시가 되기 쉬우며, 이는 곧 비현실적인 보고·통계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벽지농촌에까지 부정외래품 단속결과를 보고하라는 등지시는 그 한 전형이 되고도 남는다 하겠다.
행정관리의 개선이나 과학화·능률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되지 않는 한 이런 류의 통계부실이나 행정력 낭비가 항상 온존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속·보고위주의 행정을 지양하는 일이다.
현재 추진중인 행정권한의 하부이양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만큼 과감하게, 또한 대폭적으로 행해져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계전담요원의 확충과 부처간의 통계업무·자료의 상호교환, 조정을 통한 중복과 번잡을 피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