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서방측 결의안 선 토의부결의 뜻|부동표 흡수에 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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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7일의 「유엔」운영위에서 한국관계 결의안을 북괴측 결의안에 앞세워 토의 표결하라는 안이 실패한 원인은 주로 한국대표단측의 계산 착오에 기인한 것이었다.
「유엔」의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의제제출 순서가 빠른 한국결의안이 먼저 토의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런 관례를 그대로 믿은 한국측은 이번에 공산권과 비동맹국가들의 공세에 밀려 1표 부족으로 절차상의 난점을 당했다.
한국문제 토의 벽두에 「쿠바」는 한국결의안을 아주 탈락시키자고 제안했고 소련·중공·「불가리아」·몽고 등 북괴 지지국가들이 찬성발언을 했다. 「말리크」인니 외상도 이에 동조했다.
운영위는 결국「바르바도스」의 제안으로 남북한 결의안을 「한국문제」라는 제목의 의제 속에 제1항, 제2항으로 넣어서 토의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 관한 2개의 분리된 결의안을 한 의제로 묶어 토의한다는 「유엔」의 관례에 따른 것이다.
의제채택 여부에 관한 표결에서 한국측이 찬 9표를 받은데 비해서 북괴가 16표를 받을 때 운영위의 분위기는 짐작이 됐다.
일단 의제 채택이 결정된 뒤에 행해진 토론 순위 표결에서 한국측 결의안이 먼저 표결에 붙여져 가부 동수로 부결됐을 때 약간의 촌극이 벌어졌다. 거수표결의 찬반의 수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한 의장단은 표결을 다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중공과 「세네갈」등이 「가스통·토른」의장의 그같은 선언에 반대하고 좌우간 표결 결과를 말하라고 독촉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사무차장이 찬 9, 반 9, 기권 5라고 발표했다.
「유엔」규칙상 가부 동수면 부결이다.
두개의 반대되는 결의안을 놓고 표결에 붙였을 때 먼저 것이 부결되면 나중 것은 표결 없이 통과로 간주된다는 의사규칙을 북괴 지지국들은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영국대표가 찬 9, 반 9, 기권 5면 의장을 제외하고도 한사람이 모자라니 아마도 그 모자라는 한사람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니 다시 표결을 하면 이번에는 분명한 태도로 표결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작전도 북괴를 지지하는 나라들의 주장을 꺾지 못했다.
결국 이 빠진 한 표는 불참한「토리니다드토바고」로 밝혀졌다.
이에 「토른」의장은 결의안 접수순서는 한국 보다 늦은 북괴 결의안을 먼저 토의하자는 「세네갈」제안의 채택을 선언하고 산회했다.
「유엔」운영위가 서방측 결의안과 공산안을 「한국문제」라는 단일의제로 통합(GROUPING)하면서 공산안을 서방안보다 선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결과가 오는 10월말게 있을 총회 정치위원회의 양측 결의안에 대한 토의 및 표결에도 적용되느냐가 초점으로 부각됐다. 다시 말해 정치위 표결 때 공산안이 서방안에 앞서 표결되느냐는 것.
만약 그렇게될 경우에는 사태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예상대로 공산안이 정치위에서 먼저 통과될 경우 공산측은 『공산안 표결로 한국문제 토의는 종결됐으므로 서방안에 대한 표결은 필요 없다』는 논리로 다수 표에 의한 표결로 서방안을 원천 봉쇄, 「공산안 통과=서방안 좌절」의 결과를 가져올 우려마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우려가 아니더라도 공산안이 먼저 통과되고 나면 심리적으로 한국지지세력은 위축되어 지지열도가 줄어들고 서방안 표결이 행해진다 하더라도 불리해질 것은 명백하다.
한국의 「유엔」대표단은 운영위에서 결정한 남북한의 의제순서가 정치위의 양측 결의안 표결순서로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공산측이 이에 도전해 올 것이 문제다.
만약 공산측이 표 대결전법을 들고 나온다면 지난해처럼 이를 저지할 수 있는 표를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현재로는 의문이라는 「업저버」들의 분석이다.
한국대표단의 견해가 옳다 하더라도 정치위에서 선 표결권 확보·유지에는 난관이 예상되는 만큼 지지세력 확보를 위한 활동강화가 절실하다.
이론적으로만 말하면 그것은 총회에서의 본질문제토의와는 무관하다.
절차 문제에서 이같이 되면 찬반의 중간지대에서 부동하는 많은 나라들이 소위『「밴드·왜건」(우세한 측에 편승하는) 효과』라는 것을 타고 대세에 편승하여 유리한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문제다. 【유엔본부=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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