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계 교포의 가족 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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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석을 며칠 앞두고 조총련계 재일 동포 약1천명이 성묘차 계속 모국에 돌아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해방 30년만에 처음으로 고향 땅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이다. 일제 때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이 주름진 얼굴에 백발이 희끗희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30여년만에 고향 땅을 밟는 교포들, 이들을 맞는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워낙 서로 모습이 변해 얼핏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도 있었다. 이들의 해후의 기쁨과 감격을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기쁨이 또 어찌 그들만의 것이겠는가. 이야말로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가장 흐뭇한 추석선물인 것이다.
「이데올로기」때문에 이산됐던 이들 가족의 재회는 「이데올로기」를 넘은 인간애의 귀중한 승리의 기록이다.
재회의 기쁨을 누린 이산가족이 비록 소수라지만, 이것은 인간애의 위대한 승리의 첫걸음이다.
「이데올로기」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애의 기초가 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애를 도외시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는 존재할 필요도, 명분도 찾아지지 않는다. 이 같은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질곡과 비극을 심화시킬 뿐이다.
인간비극 중에서도 가장 한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 헤어짐의 아픔이다. 그러한 이산가족들의 사무친 한을 외면하는 「이데올로기」란 이미 존재할 도덕적 이유를 잃었다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산가족의 문제, 인간애의 문제는 결코 정치의 사족이 아니라 윤리적 선결조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공산주의 단체에 소속된 조총련계 교포들의 모국방문은 진정 뜻깊은 일이다. 이토록 대부분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 북한적을 갖고 있다. 그 동안 일본에서의 활동도 물론 친북괴적이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들은 그들이 속한 단체의 탄압을 무릅쓰고 이념을 뛰어넘어 핏줄을 찾아 고향 땅을 찾아왔다.
우리의 관계당국도 그들의 과거를 일체불문에 붙일뿐더러 단체관광이 끝난 뒤에는 완전한 자유행동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귀환 후 한국에 대한 판단도 물론 그들 나름으로 하게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흐뭇한 소식에 접하면서도 우리의 마음 근저에 깔린 우울함은 가셔지지 않는다. 그것은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북괴식 「이데올로기」의 도덕적 마비 때문이다.
이들은 비현실적이고 내정 간섭 적인 주장을 내세워 우리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인도적 노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적 측은 지난 73년7월 제7차 남북적 회담에서 이산가족·친척들로 「추석성묘단」을 구성하여 상호 방문토록 하자고 제의한바 있다. 이러한 한적의 인도적 제의는 북적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이번 조총련계 동포들의 고국 성묘 방문은 한적 제의의 부분적 실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북괴와 조총련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총련의 방해공작이 치열했다고 전한다. 조총련 측에선 모국방문자들을 집으로, 공항으로 떼지어 찾아가 여행을 저지하려했다는 것이다. 북괴집단의 비인간성에 새삼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한 재일 동포들의 고국방문이 부디 보람차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이러한 상호방문 및 재회의 기회가 조총련은 물론 남북한간에도 어서 빨리 확대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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