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435) <제47화> 전국학련(47)|나의 학생운동 이철승|창경원의 좌익집회 방해하러 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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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1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돈암장으로 이승만박사를 찾아갔다.
좌익계는 「3·1절」을 맞아 온갖 행사를 준비한다는 보도가 매일 그들의 기관지인 인민보·해방일보에 났으나 우익진영은 이렇다할 계획을 하지 않고 있어 이박사의 의중을 타진하고 싶어서였다. 학련활동으로도 말씀드릴 일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좌익은 「민전」산하에 「학통」「민애청」「전평」등 각종 동맹이 똘똘 뭉쳐 활동했다.
그러나 우익의 경우 독촉국민회, 국민당, 한독당, 한민당등이 있었지만 각기 줄기가 달랐고 그나마 임정은 여러 계보로 나뉘어 힘이 분산되어 있었다.
마침 임영신 여사(중앙대이사장) 가 『우리 철승군이 왔어』하며 나를 이박사 계신 곳으로 안내했다. 이날도 이박사께서는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우리 민족의 꽃봉오리들인 자네들만 믿네』하고 등을 어루만져 주셨다. 당시 이박사는 독촉국민회가 있었지만 이는 정당이 아닌 협의회로서 기동력이 다소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자연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성원하여주었다. 몇 가지 얘기 끝에 나는 3·1절 대책으로 전국학생웅변대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박사께서는 나의 취지를 듣고 『좋은 일』이라면서 윤치영 비서실장을 불러 봉투 하나를 주셨다.
『아껴쓰게! 나는 뜻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자네들을 충분이 도울 수가 없네, 돈이 없어 해외에서도 큰 일을 마음대로 못한 고초가 많았어.』하며 돈의 용도가 소중함을 덧붙여 주셨다.
이박사의 돈 씀씀이는 인색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 언제나 『아껴쓰게!』를 잊지 않았고 그나마 『장부에 기재하고 영수증을 보관해!』하는 정도였다. 이때 이박사의 재정형편은 퍽 어려웠다. 한민당의 송진우선생이 중심이 되어 매월5만원 내지 15만원씩을 돈암장 경비로 냈으나 미군정에 의해 좌우합작이 진행될 무렵엔 사람과 돈줄이 떨어져 갔었다.
윤치영 비서실장이 박흥직 전용정 박기효 권영일 공진항씨 등 경제인을 초치해서 저녁을 대접하며 모금을 벌였으나 그 자리에서는 겨우 2O여만윈 밖에 모금되지 않았다고 한 동산의 회상속에서 그 당시 이박사의 경제사정을 익히 알 수 있다.
돈암장 주인 심사장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돈암장을 내놓으라 하여 초라한 마포장으로 옮긴 후는 많은 고생을 하셨고 이때는 군산 경성고무사장 이만수씨가 백성욱씨를 통해 이박사의 비용을 많이 부담해 준 것으로 듣고 있다.
여하튼 이박사의 성금은 적은 보탬이 되었으나 정신적으로는 거대한 활력소가 됐다.
나는 즉시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3·1절」대책을 짰다. 그래서 오전엔 서울운동장의 기념대회에 참석하고 오후엔 웅변대회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3·1절」이 되어 서울운동장에 나가보니 웬일인지 사람이 많이 모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시민의 대부분이 창경원에 몰려갔다. 창경원에서는 조선예술가동맹, 문학가동맹 등 좌익계예술단체가 유명한 만담가인 신부출 연극배우 황철·문예봉 등을 동원해 시민위안대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즉시「트럭」3대를 동원해 「마이크」를 달고 맹원들과 함께 창경원으로 갔다. 원남동·명륜동 일대까지 인파가 넘쳤다.
우리는 그 속으로「트럭」을 몰고 나갔다. 그리고 확성기로 『이 박사와 김구선생은 서울운동장에 계십니다. 여러분, 좌익계의 농간에 빠지지 말고 서울운동장으로 가서 우리 민족의 숭고한 3·1경신을 기념합시다.』 이렇게 군중을 선동하자 돌멩이가 수없이 날아 왔다. 좌익계 학통대원들이 던지는 돌멩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좌충우돌 해가며 좌익집회를 해산시키려했고 다수의 시민을 서울운동장으로 몰고 갔다.
대회가 끝난 후 우리는 여세를 몰아 「탁치 반대 전국학생웅변대회」를 열었다.
하오1시 정동교회, 심사위원은 박순천 안호상 김산 씨가 맡았다.
이날 대회는 안재홍 (국민당당수) 원세열 (한민당총무) 엄항섭(임정선전부장)씨가 내빈으로 참석했다.
엄항섭씨의 『조선독립은 학생의 손에 달려 있다』는 축사는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웅변대회에는 윤석자 (세의전·현WHO한국대표) 이하전(연전·재미) 이외윤 (혜화전·경기대교수) 박창석 (국학전) 정요섭(보전·숙대교수) 함진현(보전·국회의원) 김평묵(보전), 그리고 송원영(양정·국회의원) 김고중 (중앙) 김득수 (성동) 군, 그리고 윤금중양(덕성)등이 나섰다.
시상은 1등에 함종현(이 땅의 사나이 목메어 운다), 2등에 이하전 (약소민족의 자각), 3등에 이외윤(정치와 학생) 그리고 중등부에서는 김고중(탁치를 주려면 죽음을 달라)과 송원영군(태극기 밑에서)이 각각 1·2등을 차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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