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베 ‘고노 담화’ 발언, 행동으로 믿게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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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02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일제 시절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군·관헌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하지 않고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5일 “지금이라도 아베 총리가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 역시 “아베 총리의 발언을 긍정적 진전으로 생각한다”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일본 각료로는 처음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어 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종전 60주년을 맞이해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했다. 이번에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동안 도발적이던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아베 총리의 발언과 인식의 ‘유효기간’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수차례에 걸쳐 한·일 정상회담 분위기가 무르익을 만하면 새로운 역사 도발로 대화 무드를 깨버리지 않았던가. 아베 총리 본인도 그동안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그때마다 양국 관계는 크게 요동치곤 했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고노 담화 계승 방침을 밝힌 만큼, 양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유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미국 정부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한 데 대한 성의 표시일 수도 있다. 일본은 특히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아베 총리의 외교적 성과로 장식하려는 듯하다.

 아베 총리의 진정성은 앞으로 일본 정부나 집권당 정치인의 언행을 살펴보며 검증할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4일 고노 담화와 관련해 “검증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총리와 각료의 엇갈린 발언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한 고노·무라야마 담화 계승 발언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한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그 정신과 마음가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한다. 걸핏하면 유효기간이 끝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이제 와서 사과 경위를 검증한다거나 사과의 취지에 어긋나는 언동을 일삼으면, 사과를 백지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측의 그런 이중성이 사라져야 한·일 관계는 더 이상 과거로 후퇴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지도자들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 그들의 향후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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