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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색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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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을에서 연상되는 색채는 황금색이 아니면 청색이다. 『9월』이라는 시에서 「헤세」도 황금색을 말하고 있다. 「키츠」는 『가을의 노래』에서 청색을 노래했다.
서가들도 가을의 느낌을 주로 황금색이 아니면 청색으로 표현하려한다. 그래서 가을을 주제로 한 그림에는 황금색과 청색이 가장 많이 쓰인다.
색채에 따라 느껴지는 것도 다르다. 적색이 정열을 연상시키듯 청색은 「델랑콜릭」한 기분을 안겨준다. 청색의 시절의 「피카소」의 그림들이 유난히 침울해 보이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음에 민감한 음악가는 색채에도 예민했던 모양이다. 「프란츠·리스트」는 「오키스트러」를 지휘할 때 가끔 『청색을 더 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애조를 띠게 하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애상을 느끼게 하는 청색에 비겨 황금색은 매우 화려하다. 「림스키-코르사코프」 F장조를 황금색으로 비유했었다.
F장조란 작곡가들이 장엄하고 명랑한 곡을 불때 흔히 쓰는 것이다.
같은 가을이라도 오곡이 무르익는 9월에는 천지가 황금색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풍요한 수확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한 행복감으로 채워놓는다. 고독의 감상에 젖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황금색들로 자연이 화장하고 있다. 완전한 F장조인 것이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 F장조는 단조로 바뀌어진다. 청색이 차갑게 가라앉는 계절이 되는 것이다.
가을의 짜릿한 참 맛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10월이다. 추석도 내일 모레, 아침·저녁으로 부는 산들바람을 흔히 가을바람이라 하지만, 9월에는 아직 가을의 쓸쓸한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잔서에 단 몸을 식히려고 저녁에 들에 나가 보는 달은 완연한 가을달이다.
그런 달을, 살기에 바빠서인지 요새는 쳐다보는 사람이 드물다. 언제부터 가을달이 뜨기 시작했는지를 알 턱이 없다. 가을달과 같은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드물다. 그만큼 모진 세파에 사람들이 덮여 있는 때문일까.
오심이추월 벽담청교도. 당대의 시승 한산의 시다. 내 마음 가을달처럼 밝고, 골짜기 푸른 물위에 고고하게 비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때의 추월이란 마음의 근원적인 것을 상휘한다. 사람의 감정은 한 때도 조용할 때가 없다.
맑을 때도 드물다. 언제나 희노애락 중의 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 밑창을 찾아보면 조금도 변하지 않는 뭣인가 순수한 인간성이 있을 것이다.
가을달은 이제부터 더욱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더욱더 맑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범죄는 날로 흉악해지기만 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욕에 흔들리게 되고-.
그때서인지 요새 뜨는 가을달은 마냥 푸르게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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