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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간첩 혐의 수사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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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간첩사건 혐의 입증에 주력하다보니 증거조작 수사가 울고, 포기하자니 간첩 공소유지가 어렵다. 검찰이 딜레마에 빠져 헤매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재판과 이 재판에 제출된 증거의 조작사건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다.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34)씨의 항소심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진행됐다. 1, 2차 공판에서는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유씨 출입경(출입국)기록 등이 제출됐다. 검찰 측이 유씨가 2006년 5월 말과 6월 초 북한에 두 차례 들어갔다 중국으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낸 문서다. 그러자 3, 4차 공판에서는 변호인 측이 내용이 다른 출입경기록을 제출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서류가 제출되자 진위 논란이 벌어졌고, 재판부는 중국에 사실조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1심에서 유씨의 간첩혐의 입증에 동원된 대부분의 증거와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핵심 증인인 유씨 동생 가려씨의 증언은 ‘진술거부권’ 고지를 안 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섯 차례 입북했다는 유씨가 북한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중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를 북한에서 봤다는 증인은 마약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공소유지팀은 출입경기록을 히든 카드로 제시한 거였다. 하지만 주한 중국 영사부는 지난달 13일자로 “검찰 측 문건이 위조됐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이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기다 검찰은 다음 공판에 전산 전문가를 부르겠다고 재판부에 증인신청을 냈다. 유씨 측이 낸 출입경기록에 두 번 연속 ‘입경(중국에 들어옴)’이 찍힌 게 전산오류로 인한 것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뒤집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출경-입경’이 찍힌 검찰 측 출입국기록이 맞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13일 이마저도 기각했다. “유씨의 출입경기록과 관련한 전산시스템을 직접 관리한 사람이 아니라 증인 신문 필요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였다. 유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공소유지팀의 이런 시도들은 ‘증거조작 수사’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간첩사건 공소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윤웅걸 2차장은 “두 사건은 딜레마 관계에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검찰의 딜레마는 증거조작 사건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스스로 최종 조작 결론을 내리면 검찰은 공소유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결심공판이 예정된 28일까지는 증거조작 사건 수사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수사팀이 감찰조사팀 역할을 맡아 공소유지팀이 기소 및 공소유지 과정에서 증거조작을 알았는지, 왜 못 걸렀는지 등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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