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에게 무릎 꿇은 자기앞수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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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회사원 강모(39)씨는 최근 세입자가 전세금을 3억원짜리 자기앞수표 한 장으로 주자 당황했다. 오랜만에 수표를 이용하려다 보니 입금은 아무 은행에서나 되는지, 현금화는 다음 날 몇 시부터 되는지 생소해서다. 그는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주고받는 데 익숙하다 보니 수표 사용이 번거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고액 거래에 유용한 수단이던 자기앞수표 사용이 급격히 줄고 있다. 5만원권 화폐와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수표의 쓸모를 대신해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기앞수표 전체 결제금액은 499조8180억원이었다. 5년 전인 2008년(825조2614억원)보다 40%나 줄었다. 결제 규모가 가장 크게 쪼그라든 건 50만원권과 10만원권 자기앞수표다. 지난해 결제금액이 5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토막이 채 안 된다. 이는 예견됐던 일이다. 2009년 6월 고액권 화폐인 5만원권이 새로 나왔기 때문이다. 5만원권은 쓸 때마다 일일이 신분을 확인해야 하는 수표에 비해 이용이 훨씬 편하다.

 100만원권 수표와 주로 고액에 쓰이는 비정액 수표 역시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100만원권 수표 결제금액은 5년 만에 반 토막 났고, 비정액 수표 역시 결제금액이 35% 넘게 줄었다. 전자결제 이용이 늘어난 게 고액 수표 사용이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수표는 경제적으로 낭비요소가 큰 지급수단이다. 정액 자기앞수표(10만·50만·100만원권)의 한 장당 제조원가는 65원, 비정액 자기앞수표는 93원으로 지폐 한 장당 제조원가(평균 130원대)보다는 낮다. 하지만 유통기간을 감안하면 수표 발행비용이 훨씬 비싸다. 수표는 한 번 은행으로 들어오면 다시 쓸 수 없는 일회용으로, 유통기간이 열흘 정도다. 이에 비해 1만원 신권 유통기간은 100개월 정도고, 5만원권도 그와 비슷할 걸로 예상된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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