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작품 출판 지원책 찾아야|무상 지원으로 바뀐 작가 기금 운영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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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이 실시 1년만에 「융자」에서 「무상 지원」으로 전환한 작가 기금 운영 사업은 「융자」의 모순점 내지 미비점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는 진흥원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계속 남아 있어 기대하는바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문예지 원고료 지원 사업과 함께 문예 중흥 5개년 계획의 문학 분야 사업 중 가장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는 작가 기금 운영 사업은 74년도 5천만원, 75년도 5천만원 등 도합 1억원으로 운영되는 사업. 당초 진흥원은 『기금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에서 꾸어주고 받는 방법을 택했으나 이 같은 융자 제도는 처음부터 시행착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l년 후 6%의 이자와 함께 상환하라는 조건으로 문인 1인당 30만원부터 80만원까지 융자해준 이 제도는 『꼭 출판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없어 문학 이외의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또 융자금으로 책을 꼭 내고 싶어도 1년 후에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섣불리 출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의 「무상 지원」은 우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혜택받는 문인들에게 부담감을 덜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집 10만원 이내, 산문집 30만원 이내라는 출판 지원금은 전체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말 돈 없어서 출판을 하지 못하는 문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금년에 혜택받게 될 30명이라는 숫자는 문인 총수 1천2백여명의 4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업 기금 설치의 목적이 『우수 작품의 출판을 촉진시켜 전체적인 한국 문학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이 같은 무상 지원 제도가 우수 작품 출판을 얼마큼 촉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매우 회의적이다.
금년 들어 문학 작품의 출판 경향을 보면 (전집류·문고본 제외) 월 평균 산문이 10∼15권, 시집이 20∼30권으로 추산되는데 30명이 무상 지원의 혜택을 받는다해서 문학 작품이 30권 더 출판되는 것도 아니며 설혹 30권이 더 출판된다해도 그것이 모두 우수 작품일 수 있느냐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특히 거의 모두가 자비 출판인 읽히지 않는 시집의 양산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 단계에서 그 같은 무상 지원은 시집의 양산만 더욱 촉진시킬 염려도 없지 않다. 문제는 정말 우수한 작품을 출판하려는 문인이 진흥원의 무상 지원금만 가지고는 출판이 거의 불가능하여 출판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데 있다.
따라서 진흥원은 문인을 돕는 제도를 운영한다는 전시 효과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다만 한편이라도 당초 목표했던 바 우수 작품 출판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진흥원은 작가 기금 심의 위원회 (위원장 백철)로 하여금 신청 작품을 엄격하게 심사하여 혜택을 주도록 하고 있으나 정실이 반드시 배제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진흥원의 무상 지원이 아니더라도 책을 내려고 준비하던 사람들만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같은 가능성은 진흥원이 대상 작품 (원고) 접수를 시작한 18일에 접수된 5건, 19일에 접수된 10여건의 대부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출판준비 중이었던 작품이라는 점으로 증명된다.
따라서 진흥원이 출판비 무상 지원 제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심의 위원희로 하여금 대상자를 직접 선정, 출판비 전액을 집중 지원한다든지 우수 작품 출판을 직접 기획, 자체 내에서 출판하는 따위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기금 1억원의 1년간이자 1천2백만원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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