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 곡물 수출|미서 찬반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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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크라이나」의 한발, 「크렘린」의 고기증산 정책이 「포드」 미 대통령의 재선을 위협하고 있다. 소련에 대한 양곡 판매 논쟁은 미국에선 그 만큼 심각하다. 72년 소련 사람들이 미국에서 1천9백만t의 밀·옥수수 따위의 식량과 사료를 구매하여 이 나라 식량 가격을 전후 최고 기록인 22%나 올려놓은 사건은 아직도 의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때 소련 사람들은 곡물 수출상들과 비밀 교섭을 벌이고, 화해 분위기에 도취된 「닉슨」 행정부의 호의로 정부 보조까지 받은 낮은 가격으로 10억「달러」의 곡물을 사갔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2년만에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이미 미국에서는 9백만t의 곡물을 사갔고, 앞으로 1천1백만t을 추가로 사갈 참이다. 『소련 사람들이 다시 온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지난 7월초부터 미국 중서부의 곡창지대에서는 환성이 오르고 「시카고」 곡물 시장은 활기를 띠고 밀·옥수수·「오트」 가격은 뛰기 시작했다.
노조가 들고일어났다. 「조지·미니」 미 연방 노조 위원장은 막대한 양의 곡물 수출은 「인플레」를 악화시키고 화해의 대가를 근로자들이 식료품 가게에서 지불하게 된다고 노발대발했다.
부두 노조에서는 소련으로 가는 곡물의 선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농산물 생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버츠」 농무 장관은 『모르는 소리 말라』고 반격한다. 소련의 곡물 매입이 식품가에 미치는 영향은 보잘 것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노조가 곡물을 말아라, 말라하는 것은 외교 정책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고 반격이다.
그러나 정부안에서 「사이먼」 재무장관과 「번즈」 연방 준비 위원장은 대량의 곡물 수출이 「인플레」를 악화시킨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버츠」 농무장관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사료 값이 올라야 고기 값을 올릴 수 있는 목축 업자들은 곡물 수출 반대자들을 매도하고 나섰다.
기고가 「조지프 크래프트」는 「뉴요크·타임스」지의 사설에서 대소 대량 곡물 수출을 통제하라고 촉구하고, 「하버드」 대학의 대소 경제 전문가 「마셜·골드먼」은 소련인 들이 미국 곡물 시장을 계속 교란하게 방치하면 화해 자체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논리를 비약시키고 있다.
반면 소련인과의 곡물 거래는 미국에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런 북새통에서 11일 「버츠」 장관은 금년도 곡물 생산량의 정확한 집계가 나올 때까지는 대소 곡물 협상을 일단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곡물 논쟁으로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은 「포드」 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가을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지시킨 바 있으며 최근에는 농산물 가격 보조금 인상 법안을 거부하여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미국 중서부의 곡창지대는 공화당의 정치 기반이다.
다음해의 선거를 앞둔 「포드」 대통령에게는 밀밭이 표밭인데 「인플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래서 「뉴요크·타임스」지는 소련과의 곡물 거래를 「포드」 대통령의 시한 폭탄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내년의 선거 때 폭발할지도 모른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당·낙은 경제 상황으로 판가름 난다는 예상이 옳다면 「포드」 대통령은 지금 미국 중서부의 농민들과 도시의 근로자들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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