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시절 (중)>
일제하에서 전국도시대항 축구대회는 항상「스포츠」의 왕좌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하일라이트」는 서울과 평양 「팀」의 대결.
평양 「팀」은 그 유명한 김용직·정룡수 선수를 주전 「멤버」로 하는 상승의 진용이고 서울「팀」또한 배종호·정남식 선수 등을 배출한 무적의 진용이니 이 접전은 문자그대로 불꽃 튀기는 백병전이다. 조선·일본·만주3국이 참가하는 신동아 대회나 조선·일본만의 명치신궁대회 에서 우리 한인들이 온 종목을 휩쓸어 우승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시절엔 유달리 「스타·플레이어」가 많았다. 「마라톤」에 손기정, 축구에 김용직·김성우·정룡수·배종호·정남식, 농구에 정상윤·홍문길·장리광·조득준· 이성구, 역도에 김성집(현 대한체육회사무총장), 육상에 인강환·유장춘·우정환등…. 나는 체육에 특장이 두드러져 많은 체육활동을 했다.
그러나 「올림픽」에 뽑힐 정도는 못됐다. 그렇지만 마침 인촌이 보전의 학풍을 바로 잡는다고 입시통제를 엄격히 해서 난다 긴다하는 서울 안 중학의 일류선수들은 거의 입학시험에서 탈락되고 2위인 내가 각광을 받게 됐다. 「호랑이 없는 굴에 너구리가 임금 노릇」 하듯 (무호동중 이작호) 나는 일약「스타·플레이어」가 됐다.
조선신궁대회(요즘의 국체)나 보연전, 교내체육대회 라도 있을 양이면 나는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주소속인 역도부·검도부·유도부 일을 보랴, 육상부·농구부선수 노릇을 하랴 l인4역, 5역을 해야 했다. 입버릇 고약한 친구들은 날더러 「잡화상」이니「백화점」이니 하고 놀려댔다. 심지어 빙상부 (당시의 「스케이트」는 한강에 얼음이 얼어야 했다). 「글라이더」부까지 참가하여, 활약을 했다.
서울운동장 에서 운동이 끝나면 으례 동대문에서 「땡땡이」전차를 탄다. 그리고는 신설동에 있는 유명한 「형제주점」에 들러 추어탕을 먹었다. 이때 제일 난처한 입장에 빠지는 사람이 이진용 육상부장(현 국회 의원·무소속) 이다. 이 부장은 체육담당인 이병학 교수를 졸라 쥐꼬리만한 예산을 타내어 회식을 마련했다. 그러나 나는 먹었다하면 서너그릇씩 해치워 번번이 예산에 「펑크」를 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언젠가 「인터콜리지」(대학 전문부 시합)대회에서 내가 백룡기 선생(현 중대교수)의 지도아래 원반던지기에서 2등을 하고 형제주점에 가서 축배를 들던 일이다. 교내 체육대회에서 근엄하기만 하던 교수들이 뜀박질을 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당시 보전의 체육대회는 교수·학생·졸업생, 심지어 학부형들까지 합세해 한 덩어리가 된 채 마음껏 즐기는 대향연이었다. 당시 보전에는 교장인 김성수 선생을 비롯하여 장덕수 옥선진 (법률학·납북)안호상 전진오 박극채(경제학·월북) 윤행중(경제학·월북)함병업 손진태(납북) 최용달(상법·월북) 진승녹(민법) 이병학(체육) 최정자(영어) ·김해균 (영어) 선생 등 이 기라성처럼 자리잡고 계셨다. 모두가 석학이요, 사상가며·투철한 지사들이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교수간에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측과 사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측으로 갈라져 은연중에 파벌양상을 노출시킨 점이다.
일제하에서 사상문제는 대수로운 것이 못됐다. 왜냐하면 급선무는 조국의 자주독립이지「이데올로기」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일세력이면 무조건「동지」로 여기던 때였으니 말이다.
따라서 교수간의 알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성향」을 의미 할 뿐 결코 「대립」은 아니며 마치 국공합작하듯 항일과 교육에는 하나가 됐다.
그러나 한번 뿌리박은 역사관의 차이는 자연히 양대 산맥을 이루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학생층에도 파급되어 사상논쟁을 빚거나 편싸움을 하는 일로 나타났다. 특히 운동부가 그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동부는 우선 완력과 행동력이 있기 때문에 두 진영은 서로 운동부 장악을 노렸고 그 결과 운동부는 양진영대립의 전위부대가 되고 말았다.
유도부와 검도부의 대립은 너무도 유명했다. 유도부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진영이 장악하고 이에 맞서 검도부는 민족진영이 장악했다. 이러한 경향은 1930연대초반 유명한 호걸전과 학생전과의 대립에서부터 연유했다. 대립양상은 2차대전이 가열되면서 모든 구기종목이 폐지되고 소위 국방체육경기인 유도와 검도, 그리고 「글라이더」만이 권장됨에 따라 더욱 첨예화했다.
여기서 호걸단과 학생단의 얘기를 잠깐하자. 호걸단은 민족주의적 기질을 바탕으로 하고 의리와 완력을 내세우는데 반하여 학생단은 진보적 기질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주의색채를 갖춘 학생「그룹」이라 하겠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호걸단이 법과중심인데 학생단은 상과중심이라는 점이다.
당시 보전의학생수는 6백여명인데다 학과도 고작 법과·상과 뿐이니 이 두 파벌의 대립은 학풍을 양분할 정도로 심각했다.
천하의 막걸리 대장이나 호걸들이 다 모였다는 호걸단은 그 「아지트」를 본관 옥상 동쪽에, 학생단은 서쪽에 잡고 맞서 있어 가위 용호상박지세를 나타냈다. <계속>계속>보전시절>
(1402)<제자 이철승>전국학연(14)|-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제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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