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업자 자살 … 임실 하천 보 의혹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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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사 수주 관련 비리로 수사를 받던 공무원과 건설업체 임원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전북도와 임실군이 발주한 하천 보(洑) 공사가 원인이었다. 임원이 자살한 건설업체는 전북 남원시에도 불법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업체가 전북과 충남북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사를 수주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8시쯤 충북 A건설사 상무 신모(53)씨가 회사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 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유서가 있었다. 유서에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다. 신씨는 이날 경찰의 3차 소환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전북 임실군이 발주한 ‘가동보’ 공사를 따낼 목적으로 브로커를 통해 강완묵(55) 전 임실군수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였다. 경찰은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신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올 1월에는 A건설사 로비와 관련, 전북도청 공무원 이모(52)씨가 고향인 전북 진안군의 야산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A건설사로부터 8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은 상태였다.

 A건설사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이 “남원시에 얘기해 공사를 따주겠다”며 A사로부터 2억원을 받은 브로커를 구속한 게 시초였다. 경찰은 이어 A사를 압수수색해 전북도와 남원시·임실군 등 전북 지역 8곳의 시·군에서 10개 가동보 공사를 수주한 사실을 알아냈다. 압수한 물품 중에는 A사와 지자체·브로커 간에 금품이 오간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1차로 전북도로 수사를 확대한 상황에서 도청 공무원이 목숨을 끊었고, 이어 임실군에 수사가 미치자 이번엔 건설업체 임원이 자살했다.

 임실군과 관련해서는 브로커 이모(59)씨가 “강 전 군수에게 수천만원을 건넸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를 구속했고, 이르면 다음 주 강 전 군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씨가 건넨 돈이 가동보 공사 1건뿐 아니라 나중에 다른 거액의 공사를 따내기 위한 사전 작업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경찰청 김효진 수사2계장은 “A건설사가 전북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공사를 따내는 과정에 불법 로비가 없었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전북 이외 지역 수사 확대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권철암 기자

◆가동보(可動洑)=‘보’는 하천을 가로막는 일종의 둑이다. 보의 높이를 넘어 하류로 물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수위를 높이는 용도로 쓰인다. 가동보는 보 중에서도 높낮이를 조절해 하천의 수위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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