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반민족적 언어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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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독교의 성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에 나타나는 「말씀」은 「그리스」어의 「로고스」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 「로고스」는 「말」 「이성」 「법칙」 「사고능력」 또는 「인간정신」이란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이 성서의 「말씀」은 인간주의자들의 해석으로는 단순히 「신」으로 해석되지만 신학적으로는 대체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 해석이 어떻든 「말」. 즉 언어라는 것의 중요성은 이로써 넉넉히 인식될만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누구보다도 그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 특히 북괴당국자는 지난 30년간 공산주의교조에 입각한 매우 의도적인 언어정책을 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 공산주의 이념의 보급에 기틀을 둔 전투적 용어가 널리 애용되고 있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 전래의 성향을 적개심 불타는 호전적 상도로 개조, 변모시키려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에 있어서 언어는 『사람들의 교제수단·사상교환의 수단으로서 자연과 사회를 변혁하고 사람을 교양개조하는데 쓰이는 힘 있는 무기』가 되고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몰고 가는 조직동원의 무기』로서만 그 존재의의가 인정된다.
따라서 그것은 『민족적 자부심과 계급의식을 높여주는 사상교양의 무기』도 되고, 『사회주의 민족문화를 남조선혁명발전단계에 맞추어 침투시키는 무기』라고도 풀이된다.
『민족어의 발전』이라는 방침은 북한에서 「문화어운동」이란 구호아래 「언어정화사업」으로 표방되었다.
그러나 북한당국의 이 같은 언어정책이 『민족을 위한 민족어』라는 미명아래 한글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정서감과 순수성을 근본적으로 거세하려는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김일성 한사람을 위해서 「원수」라는 말을 사용하고 「원쑤」라는 말을 별도로 만드는 등 언어의 조작도 두려움 없이 이루어졌다. 밖으로는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언어에서 마저 개인숭배의 「유일사상」이 강요되었다.
이러한 언어조작의 유희로 사회해제의 모순과 허위를 감추려는 것이다. 그들의 이 같은 언어정책은 크게는 「사상성의 원칙」을 강조하는 체 하면서 언어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서만 설명하는 교조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어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서 언어를 취급하는 것은 오히려 소박한 초보적 단계라고 할 수도 있다.
『언어는 이성의 기관이며, 이성의 모태』라고 하는 「하만」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언어정책은 진부한 언어관에 따른 것이 된다.
언어는 사실상 생각에 알맞는 표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이성의 출발점이며 또한 이성의 특수한 모습이라고 하겠다.
언어는 물질적일 뿐 아니라 정신적이며, 인위적일 뿐 아니라 자연적인 양면성을 가졌다. 사회와 한 민족의 정신세계를 전체적으로 포괄하고 건설하기도 하는 것이다.
때문에 민족정신이 그 민족의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훔볼트」의 설명은 경청할만 하다.
그렇다면 화려한 구호를 내세워 민족언어를 더럽히고,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틀에 맞추어 민족의 순량한 정신을 좀먹는 북한의 언어정책은 민족에 대한 씻지 못할 큰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언어란 현실을 묘사할 뿐 아니라 현상을 창조하며, 사람의 이해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이해를 구속하는 힘을 갖는다는 것을 새겨 볼 때 북한공산주의자들의 반민족적 거동에 더욱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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