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공산주의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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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남아와 남부「유럽」일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진출이 성공하고 NATO가 동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서방세계에 공산주의혁명이 급격히 팽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독의 시사주간지인 「슈피겔」은 이러한 비관론에 대해 최근의 현장이 반드시 소련의 세력권 팽창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소련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는 흥미있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다음은 「슈피겔」지의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주>
서독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동서정세 분석
공산주의 세계혁명이라도 일어날 듯 「아시아」로부터 「유럽」에 걸쳐 붉은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인도차이나」3국이 공산주의자들 수중에 떨어지고 「포르투갈」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인민전선이 선거에서 49%의 지지를 획득하는가하면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단독으로 우파연합정파를 간발의 차이로 뒤쫓는 제2의 야당으로 성장했다.
NATO동맹국인 「그리스」와 「터키」의 반목은 해소될 기약이 없고 영국과 「이탈리아」는 경제위기로 허덕이고 있다. 또 서방세계의 지도자인 미국은 종이호랑이라고까지 비유되는등 서구 「블록」은 동요되고 있다.
소련은 군축을 제의하면서도 사상 유례없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한때 「철의 장막」으로 일컬어지던 동서「유럽」 사이에는 최신의 소련기계화부대가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키신저」는 소련의 세력권이 남「유럽」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평화공존이 20∼30년 더 계속되면 지구상에서 서구사회는 소멸될 것이다』고 「솔제니친」은 말하고 있으며 「유럽」의 일부 지성들은 현재의 「유럽」이 흡사 멸망직전의 「로마」제국과 비슷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진실인가 반증을 내세울 때 몇가지 중대한 논거가 제시된다. 공산주의가 곳곳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아니며 그들이 서방세계를 능가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련은 승자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몰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사회주의상황」자체이다. 새로운 사회주의국가의 부상과 함께 소련의 영향력은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공산주의의 승리라고 일컬어지는 「캄보디아」의 경우 이른바 「공산주의」지도자들은 「부르좌」출신의 지식인들로서 세계혁명보다는 광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인물들이다.
이는 서구공업사회에서의 공산주의 진출에 어떤 모형을 제공할 수 없는 별개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소련제국」의 내부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이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사태는 이런 선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중공의 대소위협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선전에 더욱 중점이 주어지고 있다. 소련사회안에 계급투쟁을 계획적으로 선동하는 세력은 중공 한나라뿐이다.
중공은 심지어 「유럽」의 보수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소련을 괴롭히고 있다.
동남아에 공산주의가 진출했지만 소련에 획기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막대한 양의 소련군사원조를 받은 월맹은 중·소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 북괴 역시 최근에는 소련보다 중공에 기운 느낌이다.
「크메르」는 훨씬 친중공적이다. 「크메르」정부가 붕괴될 때 「프놈펜」의 소련대사관은 미대사관 못지않게 약탈당했으며 소련외교관들은 추방에 앞서 모진 고문을 받고 부녀자들은 강간까지 당했다.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소련의 모든 노력은 「쿠바」에서 년5억「달러」가, 「이집트」에서 20억「달러」가 드는등 엄청난 비용이 들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는 소련에 대한 채무를 미국이 갚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미·소에 대한 관계를 새로 정립하고 있다.
얼핏 소련은 NATO의 동요―「포르투갈」의 공산화로 또다른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르투갈」에 공산주의자들의 일당독재가 성립되더라도 소련에 이로울지는 불확실하다. 「포르투갈」의 공산주의자는 「모스크바」에 충실한 노선이 아닌 「루마니아」유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포르투갈」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경우, 서구의 우파세력이 경계심을 높여 공산주의 활동이 압박받게 될 것이므로 소련은 이런 사태가 「현상유지」의 긴장완화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 「포르투갈」의 공산화를 견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총선거에서 겨우 13%지지 밖에 못받은 공산당이 폭력으로 「인민민주주의」를 성립시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형제당들의 신뢰도 떨어뜨릴 뿐아니라 소련이 모처럼 이룩하고 있는 비폭력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공산당수 「베를링구에르」는 최근의 「포르투갈」사태를 두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민주적자유·복수정당제·정권교체원칙과는 모순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서구의 대공산당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동구류와는 판이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경향들은 소련과 같은 체제화한 공산국가에 대해서는 최대의 위험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소련안의 반체제 역사가 「로미·메드베데프」는 서구공산당들의 영향력이 증대할수록 세계공산주의운동에서 소련의 입장은 더욱 약화되어 갈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즉 서구에서 공산주의가 승리를 거둔다면 조만간 낙후한 소련은 그 지도적 기능을 훨씬 발달된 서구에 빼앗겨 「러시아」의 군림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더우기 세계혁명이 진행되면 이는 이내 소련의 국가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흐름으로 전환될 것이다. 공산주의 세계혁명이 진전되지 못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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