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한국군 현대화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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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특파원】「포드」 미대통령은 지난 11월 한국방문 때 『내다볼 수 있는 장래』에는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가의 발언은 언제나 신중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입장과 이해에 따라서 이렇게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포드」 대통령이 말한 『내다볼 수 있는 장래』는 언제까지를 말한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많다.
지난 6월중 「포드」-정일권 국회의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함병춘 주미대사는 미국기자로부터 『내다볼 수 있는 장래는 언제까지인가? 「포드」 행정부가 존속하는 동안을 말하는가?』는 유도 질문에 걸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고 평소에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슐레진저」 국방장관은 지난 5월1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군 현대화 계획이 완료된다고 반드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입장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슐레진저」는 국군 현대화 계획 완료와 미군철수를 결부시킨 것은 「닉슨」행정부이고 지금은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섰음을 지적함으로써 새로운 정책을 암시한 바 있다.
이것은 「인도차이나」 이후의 미국의 입장변화를 반영한다. 행정부는 국군 현대화 계획의 중요성을 의회에서 역설할 때마다 그게 끝나야 미군이 빠져 나올 수 있다는 암시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슐레진저」 장관은 국군 현대화 계획이 끝나면 주한미군은 철수한다는 「닉슨」 행정부와 의회간의 「암묵적 양해」의 굴레에서 「포드」 행정부를 해방시켰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에 앞으로 장기간, 혹은 무한정 주둔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슐레진저」는 앞서 말한 바로 그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기동후비군화는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한다는 인상을 최소한으로 누르면서 미군을 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의 하나를 제시했다.
현대화 계획과 미군철수는 무관하다는 발언과 기동후비군화는 진전되고 있다는 발언을 나란히 놓고 보면 「슐레진저」는 미군의 한국주둔 기간에 관해서 다시 신축성 있는 입장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76년은 대통령 선거의 해다. 「포드」가 낙선된다고 가상할 때, 특히 민주당의 「에드워드·케네디」 같은 진보적 인물이 당선된다고 가장할 때 「슐레진저」가 「닉슨」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은 것처럼 새로운 민주당 행정부는 현 정부의 정책을 한층 수월하게 재검토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갖는다.
『내다볼 수 있는 장래』를 「포드」 행정부가 존속하는 동안이라고 말한 함병춘 대사의 해석은 한국인의 귀에 거슬리기는 해도 「워싱턴」 현지에서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각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포드」 대통령이 재선돼도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의회의 움직임에 밝은 군사 전문가는 76년 대통령선거까지는 인지 「쇼크」가 잊혀지고 선거전이 백중할 경우 해외주둔 미군, 특히 「아시아」 대륙 주둔 미군의 존재가 쟁점이 되고 그렇게 되면 미군의 한국주둔에 시한 같은 것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문가는 인지사태의 충격파를 타고 의회가 76회계연도와 77회계연도의 2년 동안 한국에 대한 현대화의 잔여분 4억「달러」를 승인하면 77년 후반까지는 주한미군 철수론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들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는 한반도와 주변정세에 달렸다.
그러나 미국은 그때까지는 일-중공 평화조약, 대만문제의 해결, 일-소 평화조약 아니면 적어도 대폭 관계 개선 등을 포함하여 동북 「아시아」와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 계획의 완료와 미군철수를 정책으로 결부시키지 않아도 한반도 주변에서 예상 밖의 격동이 일지 않는 한 그 두 가지가 시기적으로 대충 맞아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한국을 떠나도 그것은 「철수」가 아니라 「아시아」전체를 방위하고 유사시에는 한국에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남기는 기동후비군으로서의 잠정적 「이동」으로 불릴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미군 「이동」계획과 한국군 현대화 계획은 미국의 전반적인 군원정책의 전환과도 거의 시기를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칼라일·모」 안보담당 국무차관보는 7월l0일 의회 증언에서 무상군원 종결에 관한 행정부의 보고를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증언에서 국방성의 안보원조 담당관인 「피쉬」 장군은 구체적으로 한국에 언급하여 현대화가 끝나면 한국에 대한 무상원조는 군사차관으로 바뀔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무상에서 유상으로 군원을 전환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오래 전부터 밝힌 장기계획이다. 그것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터키」 「그리스」 「요르단」 「이스라엘」을 비롯한 다른 모든 수원국가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상원외교위는 73년4월3일 그로부터 2년 안에 무상원조를 모두 종결하자는 수정안을 낸바 있다.
이 제안은 부결됐지만 무상원조를 종결하자는 압력은 「종결」되지 않고 중동평화협상의 부진, 인지이후 한반도의 긴장고조 등으로 지연되고 있을 따름이다.
미국은 「인플레」가 침식한 부분까지는 보상하지 않고 기왕 약속한 현대화 계획이 완료할 때까지 한국에 대한 무상은 계속할 전망이라는 것이 「포드」 미대통령 이하의 모든 고위 관리들의 다짐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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