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387)|<제46화>관세야사(34)엄승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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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량의 세관감사>
1960년11월초 국회국정감사반이 부산세관을 감사하게 되었다.
감사는 세관회의실에서 실시됐고, 국정감사반은 대부분 민주당의원들로 구성됐으며 무소속의원은 한 사람 뿐이었다.
그해 7·29선거에서 민주당이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장면내각이 성립되었을 때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송두영세관장이 관내상황과 새해 세수전망등을 「브리핑」하고 나서 감사반 의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첫 질문에 나선 사람은 경남출선 S의원이었다. 필자에게 첫 질문의 화살이 왔다.
『감시국강(필자) 은 부산세관에 있으면서 억대의 치부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 비결을 들려주시오.』
감사장에는 국희의원은 물론 수행원외에도 부산주재 재무부산하 각 기관장이 열석하고 있었다. 모두들 S의원의 첫 질문에 자못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필자는 답변겸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초 이사람은 과거 몇년동안 지방관재국에 있다가 부산세관에 온지 1개월도 못됩니다.관내실정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해야 돈을 버는 것인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존경하는 S의원님으로부터 앞으로 많이 지도를 받아야 겠습니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답변을 하면서 S의원을 쏘아 보게 되었다.
만장에 폭소가 터져나오자 S의원이 멋적은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그냥 우스개로 해본 것이니 오해마시오. 잉!』
첫 질문에 이어 몇몇의원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으나「핀트」가 맞지 않은 것도 많았다.
감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감사반장 H의원이 밀수취체용 감시선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세관청사를 한바퀴 돌아본 선량들은 세관계선장으로 나가 감시선「피킷·브트」3척에 나누어 타고 부산항내를 일주한 다음 영도·적기지구의 보세창고를 살폈다.
그러고 나서 동래에 있던 조폐공사 인쇄공장을 감사한다고 떠났다.
그날 저녁 동래 모온천「호텔」에서 부산주재 재무부산하 각 기관 합동으로 의원들에게 저녁을 대접케 되었다.
이 자리에서 평소 안면이 있는 H·Y의윈 같은 이는『S의원은 초선의원이 돼서 잘몰라 그리한 것이니 고깝게 생각말라』고 필자를 달랬다.
술잔이 몇바퀴 돌았을 때 쯤 S의원이 친히 필자옆으로 오더니 『엄국장 아까는 미안하오.우스개로 한소리니 술이나 한잔 드시오』했다. 웃으며 같이 건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연회는 밤10시쯤 끝나고 각 기관장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감사반의 숙소·연회비등 관계를 맡아 남아 있던 세관총무과장 노도윤씨는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일부선량들은 자기방에 아리따운 인형을 안넣어 준다고 주정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재무부는 김영선씨가 장관이었고 정무차관에 서정귀씨, 사무차관에 김용갑씨, 세관국장에는 김영균씨였다.
또 부산세관은 세관장 송두형씨, 감시국장으로 한때 재무부산하 지방관재국으로 갔다가 돌아온 필자, 세무국장 강만희씨(통관업), 총무과장 노도윤씨(「캐나다」이주), 감시과장 고복남씨, 심리과장 김혁진씨였다.
부산세관 화물과장자리를 놓고는 말도 많았다. 필자가 감시국장으로 부임했을 때 화물과장은 유력한 모 민주당원이 온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1주일후 50대의 S모씨라는 분이 화물과장으로 발령을 받고 부임해 왔다.
들리는 말로는 S씨는 경남 어느군의 민주당군당위원장이었는데 경남출신 민주당의원들이공동 추천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는 기왕이면 도지사자리나 하나 딸 것이지 고작 과장자리냐며 쑥덕공론이 많았다.
화물과장 S씨는 매일같이 서울에서 의원이 귀향하느니, 무슨 고관이 오느니하며 자리를 비우기가 일쑤였다.
당시 화물과장자리는 요직(?)인 셈이었다. 각 보세창고에 대한 화물배정은 화물과장 전결사항이었으므로 S과장은 순번대로 화물을 배정하지 않고 어느 창고는 모 의원이 친척의 것이라며 값비싼 화물만 골라 배정하기도 했다.
따라서 보세창고주들은 민주당에서 화물배정까지 해먹기냐고 비난을 많이 했다.
S과장자리는 필자의 옆방이었는데 그의 방에는 매일같이 서울을 오가는 민주당의원들이들고 나고해서 마치 민주당 연락사무소 같이 항상 손님이 많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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