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은 애타주의를 전제했다|「새뮤얼슨」, 「뉴스위크」지에 사회진화론 배정하는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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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풀·새뮤얼슨」은 근착 「뉴스위크」지에 『사회진화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사회진화론은 이미 반세기전에 각광을 받은바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거나 전쟁불가피론 등을 옹호해 심한 비판을 받았었다. 그러나 「새뮤얼슨」교수는 애타주의와 관련해서 사회진화논의 긍정적인 면을 다시금 평가하고 있다. 다음은 「칼럼」의 요지다.
금세기 초 미국 기업계에 나타났던 새로운 사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곧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인데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을 인용한 이 같은 개념을 가리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라 부른다. 이 같은 천박한 사회진화논의 결과로서 『대중은 저주받는다』「무능력자의 빈곤, 게으른 자들의 굶주림,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담 따위는 선견지명 있는 자비로운 신의 뜻이다』따위와 같은 격언들이 생겨났다.
내 생각으로는 최근 하나의 새롭고 보다 흥미를 끄는 사회진화논의 변형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곧 적자생존 원칙의 관점에서 본 여러 가지 집단의 구조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 낡은 사회진화론은 애타주의를 비우생학적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조세핀·쇼·로웬」이 충고한바 「자선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루분 이상의 음식을 주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식의 사회진화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의 『애타주의』에 관한 서술을 보면 개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일개미들은 여왕벌을 위해서 일하며 이것은 유전적으로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또 사람에 있어서도 어머니는 굶어가면서도 아기는 살리려 한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오랫동안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의 개념 속에서 그럴듯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해 왔다. 생물사회학자들이 인종과 「섹스」에 관한 문제들을 파헤치는데 있어서 더욱 중대한 문제가 「다윈」의 원칙으로부터 인용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여성의 역할을 생각해 보라. 여성이란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출산의 개념에서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논쟁을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동성애는 발생적으로 다소간 유전적이다. 둘째, 동성연애자들은 거의 자녀를 적게 갖기를 원한다. 셋째, 왜 동성애인자가 존속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사회생물학자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시도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 네째는 동성연애자들은 어떤 사회적 역할이든지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데 적합한 사람들이다. 다섯째,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조카나 사촌이나 형제들에게 친절히 대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여섯째, 결론적으로 상호간의 애타주의와 자연도태는 수수께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게 된다. 과연 사회진화론은 이 같은 사회적 논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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