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치의 중국 … 일본엔 구치, 미국엔 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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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새 시대 중국 외교에는 디치(底氣·저력)·구치(骨氣·기개)·다치(大氣·대범함)가 필요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8일 전인대(국회 격)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말이다. 사실상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 중국 외교의 기본 정신을 밝힌 셈이다. 그는 500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한 이날 회견을 끝내면서 특히 세 가지 ‘치’를 강조하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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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의 ‘디치’는 조국의 강성함에서 온다. 현재 중국은 ‘두 개의 100년’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조국과 인민이 우리 외교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우리는 목표 달성을 위한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 두 개의 100년은 시 주석이 중화민족 부흥을 위한 ‘중국의 꿈’ 실현 시점을 말한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중진국 수준의 국가를, 신중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화 부흥을 완성하는 현대적 선진국가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왕 부장은 ‘구치’에 대해 “이는 민족의 자부심에서 나오며 근대 이래 100년 굴욕의 역사는 이미 갔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독립 자주의 평화적 외교 정책을 펴되 국가 이익을 지키며 국제 공리를 옹호하는 중국 외교의 기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치’와 관련, “대범함은 자신감에서 나오며 중화 민족 5000년 역사에 면면히 살아있다. 바다가 100개의 하천을 받아들이듯 도량을 가진 중국 특색의 외교를 할 것”이라고 풀었다. 왕이가 제시한 이 같은 외교 코드는 이미 중국 외교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치 분석가인 마하오량(馬浩亮)은 “디치의 경우 대외적으로 주요 20개국(G20)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상하이협력기구(SCO)·브릭스(BRICs) 정상회의 등을 통해 중국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이미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며 “이 같은 자신감은 국내적으로 국가안전위원회나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를 만들어 강한 국가를 만들며 제도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왕 부장에 따르면 지난해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2개국을 방문했고 65개국 정상과 회담을 했으며 300여 명의 해외 주요 정치인과 만나 800여 협력 방안에 합의했는데 이 모두가 중국 외교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치’의 경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지난 2년여간 분쟁에서 중국이 단 한 번도 일본에 양보하지 않고 강하게 대응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미국이 신대국관계 건설에 대해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도 중국은 과격한 반응을 자제하고 단계적 해결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다치’ 외교의 전형이라는 게 마하오량의 진단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왕 부장은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에게 레드라인은 절대로 동란이나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비핵화를 실현해야 진정한 항구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일 관계와 관련, “최근 일본 지도자는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의 정신을 위반하고 중·일 관계의 기초를 훼손했으며 역사·영토 문제에서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없다”고 못 박았다.

 왕 부장은 “중국과 미국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하며 수교 35년간 지난 세월의 교훈은 바로 상호 존중”이라며 “양국이 주권·사회제도·발전·핵심 이익·중대 관심사를 존중한다면 진정으로 윈윈하는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왕이(王毅·61)=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총애한 비서 첸자둥(錢嘉東·90)의 사위로 원로의 사위 클럽을 일컫는 금거북 족의 외교부 내 선두 주자. 베이징 제2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아시아국장 을 거쳐 6자회담 수석대표, 주일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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