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교밖에 몰랐던 중2가 왜 그런 선택을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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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26면

저자: 오쿠다 히데오 역자: 최고은 옮김 출판사: 민음사 가격: 각 권 1만2000원

시체는 의문을 남긴다. 일본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나구라 유이치. 그가 어느 날 학교 운동부실 지붕 위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된다. 사인은 밝혀졌지만 소년의 등엔 심하게 꼬집힌 수십 개의 내출혈 자국이 남아 있다. 사고인지 사건인지 따지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침묵의 거리에서』 1·2

『남쪽으로 튀어』『공중그네』를 통해 사회적 문제들을 위트 있게 풀어갔던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엔 집단 따돌림(왕따)에 눈을 돌렸다.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웃음기를 뺐다는 것. 대신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을 건조하게 그려 낸다.

소설은 중반까지 예상대로 흘러간다. 나구라와 친했던 네 명의 친구들이 소년을 죽음으로 내 몬 가해자로 지목된다. 그들의 휴대전화에는 의심 가는 문자들도 남아 있다.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작은 동네가 웅성거린다. 네 아이의 학부모들은 “착한 우리 아이가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라는 자기 최면으로 경찰 수사에 맞선다.

이내 밝혀질 듯한 사건은 하지만 점차 미궁으로 빠진다. 실타래를 풀어 줄 전교 학생들은 짜맞춘 듯 조용하다. 네 명이 왕따를 시켰다는 목격자도 나오지 않는다. 되레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는 의리파”란 칭찬 일색. 반면 나구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친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속출한다.

진실이 무엇일까를 밝혀가는 과정은 곧 진실이 왜 감춰질 수밖에 없었나와 맞닿아 있다. 중2에게 또래 집단의 암묵적 합의를 깰 용기는 없다는 것. 그 합의를 깼을 때 돌아올 대가를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 속에서 홀로 견뎌야 하며, 주변의 놀림감이 되며, 아무도 내 편이 돼 주지 않는다. ‘집과 학교가 전부인’ 중2가 궁지에 몰리기는 너무 쉽다. ‘모두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몸이 반응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새떼나 마찬가지’인 그들을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거듭되는 조사와 면담으로 결국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

한 꺼풀씩 벗겨지는 이야기들로 두 권의 책이 단박에 읽힌다. 추리소설 같은 긴박한 전개력도 전개력이거니와, 그 속에서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사건을 풀어가려는 어른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묘사된다. 사건이 벌어지자 ‘차라리 자살이기를’ 바라는 가해자의 담임 선생님, 학부모들의 요구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교장, 왕따를 했다면 주도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려는 학부모들의 신경전은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100퍼센트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략)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과 상상력임에 분명하다고 저는 믿습니다”라고 썼다. 선악과 정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잣대로만 집단 따돌림을 보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물음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집단 괴롭힘은 어느 시대에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휴대전화와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노출된 현대 아이들은 그만큼 인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자란 탓에 정도라는 걸 모르는 것이다” “평범한데도 경험과 상식이 없다는 점이 소년 범죄의 비극이다”처럼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의 세태평 역시 곰곰이 되씹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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