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휩쓰는 「트루먼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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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년 들어 이른바 트루먼 열풍이 미국전역을 휩쓸고있다. 트루먼의 초상이 박힌 상의가 날개돋친 듯 팔린다. 트루먼이 의지하고 다니던 지팡이류가 도처에서 목도된다. 『미국은 해리 당신을 원해요』라는 대중가요가 젊은이들의 입을 떠나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있는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트루먼 기념도서관은 방문객들로 늘 붐비고있다. 해리를 다룬 전기는 2백50만부가 팔려나갔다. 선친을 회상한 딸의 회고록은 지가를 올리고 해리를 다룬 연극·영화는 모두 히트를 치고있다.
백악관을 떠난 지 25년이 지나고 지금은 고인이 된 트루먼이 이제 새삼스레 2억 미국인의 우상으로 등장하는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특히 인지사태로 아시아라면 진저리를 내는 미국인들에게 그는 한국전을 이끈 지도자였고 더군다나 냉전의 주장이기도 하다. 또 그는 정치밖에 몰랐던, 그리고 지독한 험구를 즐긴 아주 평범하고 정직한 미국시민이기도하다.
그는 윌슨 대통령 같은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프랭클린·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위대한 현실타개력을 가진 정치가도 아니었다.
케네디가 『새로운 개척자정신』으로 미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 존슨이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겠다, 그리고 닉슨이 『법과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등의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로 대통령직을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조용하게 모든 미국인에게 『공평무사』를 내세웠을 뿐이다.
그는 또 비상시기에 선거를 거치지 않고 우연하게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히로시마 등에 원폭투하를 명령했고 2차대전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선으로 출전명령을 내렸던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트루먼 숭배열이 높아가는 것은 닉슨의 추악한 몰락과 야심가들의 전쟁터였던 인지의 붕괴로 권위와 신화가 난비하고 지나친 야망이 지배하던 미국정치풍토가 파산되었다는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개척자정신』은 특히 인지반도에서 미국의 참담한 패배로 그 빛을 잃게되었고, 8천억달러를 쏟아넣은 『위대한 사회』건설은 멍든 미국사회의 치부들을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으며 『법과 질서』를 고래고래 외치던 닉슨이 스스로 『법과 질서』를 파괴하여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깊은 정신적 멍에를 씌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당분간 미국을 이끌 지도자상으로 정직하고 솔직하며 또 중의에 따른 과단성 있는 한 평범한 인간을 바란다는 잠재적 심리에서 트루먼을 때늦게 내세우기 시작했다.
여기에 76년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포드 대통령이 그 자신과 여러가지 점에서 유사했던 트루먼 열풍을 교묘하게 활성화시킨 것. 포드는 연초 트루먼의 딸을 일부러 백악관에 불러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가 당신 선친에 대해 품고있는 경모의 마음을 알고있다』고 말함으로써 미풍에 머무르고있던 소위 트루먼 광기를 열풍화시켰고 그후 마야궤스호 사건에서 트루먼식의 결단을 보인 것도 76년 대통령선거를 향한 포드의 치밀한 인기작전의 일면이라고 논객들은 결론짓고 있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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